전지와 도부수
자연재배는 기실 쉽다.
거름을 내느라 부산을 떨 필요도 없고,
비료를 뿌리느라 용을 쓸 일도 없다.
게다가 병충해도 거의 없은즉,
농약 칠 걱정도 없다.
오직, 풀과 어찌 친해질까를 궁리할 일만 남았다.
그렇지만, 이는 힘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마음과 철학으로 정립할 문제일 뿐이다.
허니, 왜, 아니 쉽지 않다 이를 까닭이 있으랴?
다만, 내가 손재주가 없어 전지만은 쉬이 손에 익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게다가 나무를 함부로 자른다는 것이 못내 그릇된 짓으로 여겨져,
보다 적극적으로 전지에 임하지 아니 하였으니,
그 배움이 마냥 더뎠다.
헌데, 그리 놔두면, 우산살처럼 뻗친 잔가지가 많아지고,
과일 크기가 작아지곤 한다.
집에서 소비될 것이라면, 별 문제가 없지만,
판매를 하게 되면, 작은 것을 소비자는 외면하고 만다.
오늘날 현대의 농업이란 것이, 소비자를 과도하게 의식하지 않을 수 없도록,
구조화되었기에, 이 얽힘으로부터 자유롭기가 쉽지 않다.
그러한즉, 자연재배 농사 철학과 전지 행위는 서로 대립하여,
그 동안 나를 제법 고민스럽게 하였다.
전지는 기실 따지고 보면,
나무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병들고, 죽은 가지를 쳐내는 것이야 물론 나무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무가 잔가지를 많이 내고, 꽃눈을 많이 다는 것은,
나름 나무에게는 모두 기획 의도가 있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즉 가급적 많은 과실을 두어, 생식 본능의 목표에 충실코자 함이리라.
헌데, 인간 입장에서, 잔가지가 많으면,
우선은 과실이 작아지고 그러면 즉각 상품성이 없다며,
시장에서 외면을 받고 마니 농부가 이를 달갑게 여길 수 없게 된다.
하니까 이를 쳐내어 나무의 의도를 무참히 꺾어버리고 만다.
(출처 : uconn)
나무는 앞날의 기후변화를 예측하지 못한다.
하기에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생식, 번식 행위에 주력한다.
하지만, 인간은, 당년대의 기후변화를 어느 정도 예측하여 대응하며,
매달릴 과실 양을 조절하며, 농경영학적 균형을 취하며, 전지를 행한다.
산아제한처럼, 그 산출량을 조절함으로써,
경제적 최대 기대 효율치로 접근해간다.
이 양자의 태도에 대한 절충은 없다.
오늘날 전지란, 그저 인간의 욕망, 판단에 따라 행해질 뿐이다.
따라서 나무는 간단(間斷)없이 인간에 의해 휘둘림을 당하고 만다.
산아제한이라?
올해 전지를 하면서,
문득 이 생각이 떠오르자,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늘상 나무를 자르면서,
이게 과연 옳은 짓인가?
보다 바람직한 방법은 없는가?
나는 끊임없이 회의하였었다.
(출처 : researchgate)
이 그림은 열매가 익어가며, 중량과 크기가 어찌 변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중량은 씨앗이 들어차면서 확 증가함을 확인할 수 있다.
씨앗은 벌에 의한 화수분(花受紛) 정도에 따라 그 숫자가 정해진다.
그러한즉, 전지가 끝나고선, 남아 있는 꽃눈에서 피어난 꽃을 방문하는 벌을 잘 맞이할 일이다.
(출처 : extension)
개화후, 수확까지의 시일은 다음과 같다.
북부하이부시의 경우 90일, 남부하이부시는 55~60일, 래빗아이는 60~135일.
참고로, 농장 하우스 안에 있는 레가시의 경우, 제일 먼저 꽃이 피었다.
이는 역시 남부하이부시의 피가 섞였기 때문일 것이다.
(출처 : uconn)
하이부시 블루베리의 경우,
꽃눈엔 5~10개의 꽃들이 들어 있다.
꽃눈은 도톰하고, 잎눈은 그보다는 좀 작다.
꽃눈은 전년도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에 형성되어,
이듬해 꽃을 피어내고 과일을 만들어낸다.
품종에 따라서, 헤아릴 수도 없게 많은 꽃눈이 달리는 것이 있다.
그러니 이것이 모두 꽃이 피고, 열매를 단다면, 실로 엄청나게 많아진다.
꽃눈의 5~10배이니 이 정도면 과시 감당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 산아제한(産兒制限), 아니 産芽制限이라도 하여야,
충실한 열매를 얻을 수 있게 된다.
대개 초보자는 겁이 나고, 아끼다가, 꽃눈을 다 쳐내지 못하게 된다.
하여, 매년 과장하여 말한다면 콩알만 한 블루베리를 얻곤한다.
이 경지를 넘게 되려면, 몇 년은 고생하여야 한다.
수호지에 나오는 도부수(刀斧手) 이규(李逵)처럼,
보이는 족족 꽃눈, 가지 모가지를 쳐내는 모습이라니!
밭에 들어, 가위를 들고 이 모습이란 얼마나 흉한가 말이다.
참으로 전지란 작업은 모질고도 모진 짓이라 하겠다.
다만, 그를 두고 모두 흉하다 이르는 가운데,
청대의 김성탄(金聖嘆)만은 이규를 천진난만하다며, 상상인물(上上人物)로 상찬하였다.
(李逵是上上人物,寫得真是一片天真爛漫到底)
하, 도끼를 휘두르며, 사람 모가지를 똑똑 잘라내기로 한다면,
마땅히 이규처럼 천진(天眞)이 되어야 하리라.
(출처 : baidu)
얼마 전 ooo ooo가 가평 별장에서,
가지 치는 모습이 포착된 적이 있다.
그 장면을 보니, 평화란 이름을 가진 여인 하나가 뒤를 따르고 있었는데,
혹자는 그 모습을 보고 취미 하나 고상하구나 하였다.
아, 가지치기가 고상한 취미인가?
꽃 같이 아리따운 여인네가 시중을 드는 가운데,
복숭아 나뭇 숲 사이를,
춘풍을 이마로 가르며,
거닐다 보면 어느 새,
아흔 노객의 마른 가슴일지라도,
춘심이 봉굿봉굿 솟아 오르리라.
그럴 상도 싶구나.
하지만, 한 달여 전지를 하고 있는 나에겐 취미가 아니라,
고행이요, 수행이라 하여야 하겠다.
게다가 끊임없이 의식에서 솟아오르는,
전지에 대한 원천적인 회의감은 나를,
쉬이 풀리지 않는 시험에 들게 하였음이다.
중절(中絶)수술하고, 마음 편한 의사(abortionist)가 있을까?
나 역시 꽃눈을 따고, 생가지를 자르고 있었음이니,
어디 나가서 자랑할 일이 아니라,
향초 사르며, 어디 산천 기도라도 드려야 하리라.
하여간, 올해에 들어, 손이 익자,
비로소 얼추 9성(九成)의 단계에 든 느낌이다.
다만, 이규가 도끼를 휘두르며, 그가 꿈꾼 세상은 과연 무엇일까?
이에 비추어,
나의 전지가 과연,
어떠한 세상을 겨냥하고 있는가?
이 물음을 거푸 던지며,
저 블루베리 숲 속으로 마냥 유영을 하였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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