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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무(鐘巫)

소요유 : 2021. 4. 23. 13:40


종무(鐘巫)

동주열국지(東周列國志)를 읽다 보면, 
수많은 귀신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요즘 사람들은 귀신이라면, 
허무맹랑한 것이라 코웃음을 칠 것이다.

하지만, 단 몇십 년 전만 하여도,
병이 난다든가, 집안에 큰 우환이 있으면,
점집을 찾아가고, 당골 무당을 찾아가 앞길을 물었다.
그러다, 코가 꿰이면, 부적을 사거나, 
큰돈을 주고 굿을 하기도 하였다.

과연 귀신은 있는 것인가?
귀신을 잘 모시면, 피흉추길(避凶趨吉)할 수 있음인가?

만약 이게 다 부질없는 것이라면,
왜 그리 잘났다는 사람들이 살아간다는 오늘날에도 귀신을 모시고 있는가?
당장 보아라,
국가에서는 현충원을 두고,
철마다, 때마다, 제사를 지내지 않던가?
게다가, 평소에는 제 주머니 채우기에 혈안인 위정자들은,
잘도 찾아가, 헌화, 헌향하고, 
때론 곧잘 무릎 꿇고 빌기까지 한다.

윤 위원장은 이날 원내지도부와 함께 현충탑에 분향한 뒤 무릎을 꿇고 1분간 참배했다. 그는 참배후 방명록에 '선열들이시여! 국민들이시여! 피해자님이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민심을 받들어 민생을 살피겠습니다'라고 적었다.

당 관계자는 "'피해자님'은 이번 보궐선거의 발생 이유가 됐던 (박원순·오거돈 성추행) 피해자들을 언급한 것"이라고 부연설명했다.
(※ 출처 : viewsnnews)

(※ 출처 : donga)

만약, 귀신이 있다면,
그 섬김엔 전일(專一)함이 있어야 한다.
즉 성(誠)과 경(敬)으로 귀신을 모셔야 한다.

현충원에 한 인간이 들렸다 하자.
그렇다면, 그 자리에선 그저 귀신만을 섬길 일이다.
왜 그 자리에 국민이 등장하고, 피해인이 끼어드는가 말이다.

국민을 소환하고, 피해인을 불러서,
전일함을 흐트러뜨린다면,
어찌 귀신이 호젓하게 흠향(歆饗)하실 수 있으랴?

귀신으로선, 난데없이 국민, 피해인과 함께,
제물(祭物)을 나눠 잡수셔야 할 판인즉,
이것 여간 난처한 일이 아니리라.
한이 많은 귀신이라면,
아마도 버럭 역정(逆情)을 내시고,
때론 일 없다며, 
젯상을 엎어버리시지나 않았을까나?

그렇지 않은가?
귀신 받들겠다고,
찾아온 인간이,
곁다리로 다른 물목을 끼어 팔고 있다면,
이게 장사꾼이지,
제주(祭主)일런가?

입장 한 번 바꿔 생각해보라.
그대가 귀신이라면,
아주 고약한 일이라 여기지 않을 도리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나는 이 장면 앞에 이르러 문득,
문재인의 세월호 방명록이 생각난다.

(※ 출처 : sedaily)

사진은 2017년 3월 10일,
문재인이 후보 시절,
진도 팽목항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를 찾아 직접 작성한 것이다.

지금 윤호중이 현충원 가서 한 행동에서,
<호국영령(귀신)>, <국민>, <피해인>
그리고 문재인의 <미안하다>, <고맙다>

이들은 배반사건(exclusive events, 背反事件)이다.
이는 서로 동시에 한 곳에서 만날 수 없는 사건을 이르는 말이다.
하나가 일어나면, 다른 하나가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을 말한다.
이 정도는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배우지 않았는가?

먼저 전자를 두고 생각해보자.
얼핏 귀신, 국민, 피해인은 한국에 연이 닿아 있으니,
종속사건으로 보려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충원이란 장소 제한 조건,
그리고 그곳에서의 헌향 행위가 가진 의미를 되새겨 볼 때,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전일(專一)한 정성으로 분향(焚香)에 임하여야,

그 귀신을 모신다는 행위의 상징성, 의도가 바로 살아질 수 있다.

혹여, 그로 인해, 효과가 난다면,
그는 차후의 일이지, 
지금 그 결과가 원인 자리를 함께 탐할 것이 아니란 말이다.

환언하면, 귀신 밖에 다른 것을 껴 팔면,
귀신이 온전히 만족하실 수 없다.
그러함이니, 윤호중은 저 자리 귀신을 위해 간 것이 아니고,
마음자리에 다른 뜻이 섞여 있었다 할 밖에,

買一贈一이라,
원플러스원, 원플러스투 ...
그는 상행위를 한 것이다.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배반사건을,
저이는 종속사건화 하여버렸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 성추행 피해자는 22일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현충원을 찾아 사과한 데 대해 "너무나 모욕적"이라고 반발했다.

오 전 시장 피해자는 이날 부산성폭력상담소를 통해 밝힌 입장문에서 "현충원에 안장된 순국선열이 아닌데 도대체 왜 현충원에서 제게 사과를 하느냐"며 이같이 말했다.
(※ 출처 : viewsnnews)


피해자의 반발은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지금 나타나지 않았지만,
나는 귀신 입장에 서서,
귀신 역시 심한 모멸감을 느끼셨을 것을 대변하고자 한다.

하니까 윤호중은 배반사건을 종속사건으로 변질시켜버림으로써,
수능 시험을 망쳐버렸다 할 밖에.
하지만, 이는 무지에서 온 것이 아니라,
실인즉, 내심의 의사가 그러하였을 뿐인지라,
이를 들켜버릴 것이 빤한데도,
자신의 욕심이 눈을 가려 버렸다 할 밖에.
이러고서야,
어찌 성적이 잘 나오길 기대할 수 있으랴?

이번엔 후자를 살펴보자.

“얘들아 너희들이 촛불광장의 별빛이었다. 너희들의 혼이 천 만 촛불이 되었다. 미안하다. 고맙다.”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려면, 그리하면 될 일이다.

헌데, 저 문장의 전개 행로를 따라가 보라.
세월호 아이들이 촛불광장의 별빛이 되길 의도했는가?
그들의 죽음과 촛불광장은 종속관계가 아닌 배반 관계이다.

그런데, 그는 이를 자신의 시장 점방 안으로 끌어들였다.

별빛이 촛불로 화하는 신이(神異)한 저 마음보.
나는 이게 심히 불결하게 느껴졌다.

별빛은 그것 자체로 귀한 것이다.
그런즉, 그 어떠한 목표로 견인되어서도,
정치적 의도로도 동원될 수 없다.

헌데, 그는 더 나아가,
미안함이 고맙다로 승화되버리는 경악(驚愕)스런 절기를 시전한다.

도대체가 세월호 아이들이,
차후 고마와야 할 현실 작업 목표를 겨냥해 죽음에 이르렀는가?
이 땅에 사는 아무도 그들의 어처구니없는 희생에,
고마움을 느끼는 이는 없을 것이다.
정상인이라면.

이 두 가지 이율배반적, 배반사건을,
아무런 문제의식도 가지지 못하고,
그냥 부려놓는 저 뻔뻔함, 몰염치가 내겐 너무도 낯설고,
놀랍고, 두렵다.
그리고 화가 난다.

이 지경으로 위정자들의 인성이 이즈러질 수 있는가?

내 이른다.

분향소에 가면,
가만히 머리 조아리고,
헌향(獻香), 헌화(獻花)할 일이다.

같지 않게,
다른 것을 끼어 팔지 말 일이다.

귀신은 원래 밥을 들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향불을 피어, 그 향을 흠향하시라 하는 것이다.
젯상에 진설(陳設)한 음식들은,
실제론 미욱하기 짝이 없는 후손들의 허전한 마음을 채워줄 뿐.
그 기능 기제는 귀신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을 향한 것이다.

연애할 때, 연인에게 꽃을 사주는 것은 무엇인가?
육신을 가진 존재들은 감수기관이란 오관(五觀), 육근(六根)에 갇혀 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이것 외 다른 기관은 생각해내기 쉽지 않다.

하지만, 육신을 벗은 존재는 이 기관에 예속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귀신은 향을 먹는 것이다.

하니까, 관음(觀音), 문향(聞香) ...
소리를 보고, 냄새를 먹기도 하고, 듣기도 하는 등,
감각기능이 고유 감수 기관을 넘어 crossover하며,
자유자재로 노니는 것이다.

그러함이니,
진정 그대가 귀신을 위한다면,
제상 머리에서 다른 것을 끼어 팔기를 하지 말지라.
장사꾼으로 귀신을 만날 일이 아니란 말이다.

그저 향불 하나 켜 올리고,
흠향하시는 것을 삼가 지켜볼 일이다.

연애도 마찬가지,
꽃을 주는 것은,
그 자리, 예물이 아니라,
바로 마음을 전하는 것임이라.
crossover
그 자리에서,
꽃을 전하면서 나랑 사귀자고 조른다면,
그리고 그 말을 바로 사준다면,
이것은 아주 지지리 하궁상 떠는 일이 되는 것이다.

연애를 장사하듯 하고서야,
어찌 복사 빛 그 달달 알알한 상열(相悅)의 경지에 이를 수 있으랴?
천하디천한 것들.

우리는 정치를 제대로 아는 인간이 정치인이 되길 원한다.
정상배(政商輩), 장사치들을 원한 것이 아니다.

제발,
귀신 앞에서는 귀신만을 위하자.

내가 도대체,
그리 잘난 네들에게,

제사 지내는 법까지 알려주어야 하겠는가?

정치하는 치들,
정말 징그럽다 징그러워.

***

글이 길어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은 내가 처음부터 떠올리고 있던,
귀신 이야기를 이제야 부려내며 그치고자 한다.

그래, 이제,
종무(鐘巫)란 귀신을 말할 차례다.

춘추(春秋)시대, 노혜공(魯惠公)에겐 정실 소생인 궤(軌)가 있었다.
하지만 노혜공이 죽고 후위를 물리고자 하니 궤는 너무 나이가 어렸다.
의논 끝에 첩의 소생인 식고(息姑)가 왕이 되었다.
이가 곧 노은공(魯隱公)이다.

노은공은 사람이 어질어,
평소에 늘 이리 말했다.

'이 자리는 내 것이 아니라,
본래 궤의 것임이라,
장성하면 그에게 자리를 물리겠다.'

하지만, 공자 휘(翬) 때문에 사달이 나고 만다.
휘는 노은공을 찾아가 후일을 안전하게 도모하려면, 
궤를 죽여버려야 한다고 간했다.
하지만 노은공은 노발대발하면서 그를 물리쳤다.

이에 위험을 느낀 휘는 도리어,
궤를 충동여, 반란을 일으켜 노은공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게 된다.

이야기는 이리된 것이다.

본래 식고(노은공)는 군위에 오르기 전, 정나라와 싸울 때,
포로가 되어 호양(狐壤) 땅, 정나라 대부 윤씨(尹氏) 집에 머물렀다.
윤씨는 종무(鐘巫)란 귀신을 섬겼다.
식고는 도망가 노나라로 들어가는 것을 꾀하여,
몰래 종무에게 기도를 드렸다.
그 점괘는 길하다고 나왔다.
이를 윤씨에게 말하자,
정나라에 뜻을 두고 있지 않은 윤씨는 식고와 함께 정나라를 버리고 떠났다.

그 후, 노은공은 노나라에 돌아와,
종무를 모시는 사당을 짓고,
때마다 친히 가서 제를 지냈다.

휘는 궤에게 이를 말하며,
제를 지낼 때를 노려,

그가 묵는 숙소에서 죽이자고 권하였다.

여차저차 하여 이 계획은 성공하고,
노은공은 인정을 베풀려다, 도리어 죽임을 당하고,
왕위까지 빼앗기고 만다.

염옹(髯翁)이 사서를 읽다 이 대목에 이르러, 시 하나를 지었다.
이제 그를 여기 떠올려 본다.

狐壤逃歸廟額題,年年設祭報神私。鐘巫靈感能相助,應起天雷擊子翬。

“호양 땅에서 도망쳐 와서, 사당을 짓고 현판을 달고,
 해마다 제사상 올려, 귀신에게 사사로운 은혜를 갚았다.
 종무라는 귀신이 효험이 있어, 서로 도울 능력이 있다면,
 하늘이 감응하셔, 벼락을 내리쳐 공자휘를 벌했으리라.”

염옹은,
귀신이 정말 있다면,
제를 지내면 복이 따라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종무가 영검스런 귀신이라면,
어찌 간신 휘를 사전에 쳐 죽이지 못하고,
되려, 자신이 죽임을 당하고 말랴?

내 윤호중의 망발을 보고는,
이내 종무를 떠올려 보는 것이다.

귀신 섬기는 자리에 가면 귀신을 섬길 일이다.
거기 가서,
제아무리 民心, 民生 떠들어 보아야,
종무 짝이 아니 나란 보장이 없다.

차라리, 귀신 섬기길 관두고,
시장 한복판에 가서 엎드리고, 무릎 꿇고 절을 하며,
네들 과오를 빌 일이다.

진심이 있다면, 피해자께 찾아가,
사죄하고, 용서를 구할 일이다.

진정 본 뜻이 거기에 있다면,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를 마주하여,
산 자를 위한 정치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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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 2021. 4. 23. 13: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