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츠와 휴지통
팬츠와 휴지통
나는 소싯적 우연한 기회에,
박경리의 소설을 접했다.
그리고는 접신(接神)을 하듯,
학교 도서관에 있는 그의 소설을 모두 섭렵(涉獵)했다.
깡그리.
그런 만큼 그를,
아니 만난 바 없으니,
인간 그 자체는 내 알 수 없을지라도,
다만 그의 글을 열병처럼 사랑했다.
이제 오늘은 오직 글을 쓰려는 화제에 집중하자.
그의 글 중에 인상 깊었던 것이 있다.
밖으로 외출할 때,
그는 팬츠를 갈아입는다 했다.
왜인고 하니,
혹여라도 교통사고가 났을 때,
더러운 모습을 보이는 게 저어된다는 말씀이었다.
나는 집사람으로부터 매양 지청구를 듣는다.
오늘도 지적을 받았다.
농장 일을 하는데,
속옷이 더럽혀지고,
때론 쉬이 구멍이 나고 헐어버리기 일쑤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을 만날 일도,
발가벗고 뽐낼 일도 없는 신세다.
(※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
나는 이를 한껏 즐긴다.
농부란 정말 내 성정에 딱 알맞다.
다만 오늘날 농사는 지랄, 오살을 떨기 전엔,
결코, 돈을 크게 벌 수 없는 천덕꾸러기 업이 되었다.
아니, 유사 이래, 농부는 매양 수탈의 대상이었지.)
그런즉 악착같이 마지막까지 입을 요량이다.
박경리는 과시 여인네이고나.
나는 팬츠도, 런닝도 빵구가 나고,
누렇게 변색이 되어도 오불관언이다.
혹여 교통사고가 나서,
그런 모습이 까발려진들, 대수랴?
세상 사람에게 이르노라.
네, 이 녀석들,내 팬츠에 구멍이났다 한들,
네 마음에 매양 숭숭 빵구난 네놈들보단,
내가 한 길 윗길이 아니랴?
우리 때는,
법정, 이향봉, 석지현 스님이 유명했다.
나는 이 스님들께 깊이 경도되었다.
법정, 이향봉의 맑고, 향그로운 그 정갈함이란 도대체가.
허무장발승 석지현의 구도를 향한 열정을 사랑했다.
아마도 당시 그들의 책을 나는 거지반 모두 읽어내었을 터이다.
만나 뵙지는 못하였기에,
바위 아래 홀로 숨어 피는 야생화처럼,그들을 숨어 연모하였다.
그 법정 스님은,
집을 떠날 때는,
휴지통을 비우셨다 한다.
팬츠를 갈아입는 박경리,
그리고 휴지통을 비우는 법정.
이 결벽증이란 도대체가.
아마, 짐작하거니와,
조선 팔도에, 그 밖에서,
이리도 개결(介潔)한 이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으리라.
우리 때는 모두 궁한 시절이라,
나는 법정, 이향봉, 석지현 스님 책도,
학교 도서관에 있는 것을 모조리 다 훑었지만,
빠진 것은 겨우 몇 권만 사서 메꾸었다.
나의 독서 이력이란,
이리도 구멍 난 팬티, 런닝구처럼,
늘 완벽을 기할 수 없었다.
아아,
팬츠와 휴지통이라.
이는,
너무도 멋진 화두구나.
팬츠, 휴지통이라니,
이들은 왜,
이렇게,
사람들에게,
짙은 향기를 내뿜고 있음인가?
새 팬츠,
비워진 휴지통.
아,
오늘 집사람에게 버리란 지적을 받았지만,
나는 오연(傲然)히,
헤진 런닝구를 석 달 열흘은 너끈히 더 입고 말리라.
흙투성이, 농군이니 뭣을 가리고, 꾸밀 것이 있으랴?
그러면,
박경리,
법정보다는,
내가 사뭇 독한 인간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출처 : 網上圖片, 嵇康)
죽림칠현 중 유일하게 최후까지 절개를 지킨 혜강(嵇康)
내가 사모하는 이다.
그는 키가 身長七尺八寸라 하였다.
그는 절개뿐이 아니라,용모도 실로 빼어났는가 보다.
그를 두고, 여러 사람이 차탄의 말을 쏟아 내었다.
美詞氣,有風儀,而土木形骸,不自藻飾,人以爲龍章鳳姿,天質自然。
마치 흙이나 나무처럼 질박하여 꾸미지 않았으나,
본디 풍채가 뛰어났다 하였다.
그 밖에 그를 두고 읊는 글들은,
깨알처럼 많이도 쏟아지고 있다.
見者嘆曰:“蕭蕭肅肅,爽朗清舉。”或雲:“肅肅如松下風,高而徐引。”山公曰:“嵇叔夜之爲人也,巖巖若孤鬆之獨立;其醉也,傀俄若玉山之將崩。”有人語王戎曰:“嵇延祖卓卓如野鶴之在雞羣。”答曰:“君未見其父耳。” 好友山濤稱其“站時就如孤鬆獨立;醉時就似玉山將崩”。 ...
밤에 만나면 절벽에 홀로 우뚝 솟은 소나무요,취했을 때는, 막 무너져 내릴 듯한 옥산(玉山)과 같다.
닭의 무리 중에 우뚝 솟은 학 한 마리 ...
내 그를 본받아,
土木形骸,不自藻飾
그저 꾸밈없이 흙과 나무처럼 살리라.
이것이말로, 농부의 특권이 아니랴?
그가 지었다는 千古之絕唱 광릉산廣陵散을 여기 덧붙여두며,
술 취한 사설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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