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月亮狼

소요유 : 2021. 7. 10. 12:41


올해는 일기가 불순하여,
블루베리 수확이 예년에 비해 사뭇 여의치 않다.

수확 전에는 비가 적절히 내렸다 하겠으나,
수확 철엔 비가 오면 과일 품질에 영향을 미치니,
가급적 오지 않는 것이 좋다.

오풍십우라,
과시, 
닷새에 한 번씩 바람이 불고, 열흘에 한 차례 비가 오니,
우리 지역은 땅이 풍건(風乾)되고 우습(雨濕)되어,
식물이 자리기 알맞은 상태가 금년 내내 지속되었다.
(※ 참고 글 : ☞ 오풍십우(五風十雨))

하지만, 이게 수확 철에도 지속되는가 싶더니,
이내 장마가 오니, 땅이 마를 만하면 다시 적셔져,
과일이 물을 머금어 당도가 낮아지고 만다.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수확을 하고 있으나,
앞일은 어찌 전개될는지?

이런 상황 하에서,
식물들이 방향 감각을 잃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만생종이 먼저 익기도 하는 한편,
조생종이 아직 덜 익기도 한다.
게다가 동일 과수 내에서도,
숙기가 고르지 않아,
분명 이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하겠다.

이에 수확하는 일 역시 가지런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동쪽 나무로 갔다가, 서쪽 나무로,
조생종에서 다시 만생종으로 이동하며,
가을 벼 이삭 따라 날아다니는 메뚜기 짝으로,
분주히 옮겨 가며 춤을 추고 있다.

얼마 전 한 인간이 있어,
나를 두고 블로그를 통해 장사를 한다는 이가 나타난 적이 있다.
하여, 이와 관련된 소회의 글을 적은 적이 있다.
☞ 화이부동(和而不同) ⅱ

내 이제껏도 거의 그러했지만,
앞으로는 아예 이곳을 통해서는,
블루베리 판매를 하지 않기로,
다시금 그 선언의 말을 명토 박아둔다.

기실, 우리 것은 없어서 못 파는 실정이다.
자연재배
이것 가치를 알아주는 이가 드물다.
그저 맛이 좋고, 크다고 기억 하는 이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애써 일러준다.
우리 것은 맛, 크기가 아니라,
무비료, 무농약, 을밀농철.
바로 이것에 가치가 있음이라,
안전하다는
그 신뢰의 토대 위에,
우리 블루베리가 있다.

마이동풍.

말하는 중에도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연신 크냐고 묻는다.
블루베리를 내주었더니,
크구나 하고 흡족해 한다.
이러니, 천하의 계집들이 얼굴에 그 무서운 칼 대고,
째고, 자르고, 붙이는 짓을 무릅쓰고 말지.

계집들도 모두 망하고,
사내 녀석들도 다 뿌리가 썩고 말리라.

열매의 맛, 향, 색깔 이 3 요소는 기실 한 가지 근원 물질로부터 발현된다.
야생 상태를 본받아 재배할 때, 이게 최상으로 유지된다.

사내나 계집이나 모두 근원은 돌보지 않고,
거죽 흉내 내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이러고서야 어찌 장구하니 앞을 기약할 수 있으랴?

有為於事,廢於自然;有為於義,廢於仁;有為於色,廢於精神也。
(老子河上公章句)

“일을 도모하려 하면, 자연을 폐하게 되고,
의를 행하려 애쓰면, 인을 폐하며,
색을 꾸미려 하면, 정신을 폐하게 되느니라.”

일반 시장의 소비자는 크고 맛 좋은 것, 그리고 싼 것만 찾는다.
유기농, 자연재배는 결코 가치 평가 요소가 되지 못한다.
시장은 소비자와 생산자가 출몰한다.
그리고 거기 나오는 물건들이란,
이들 욕구에 의해 지배된다.

시장은 함께 만들어 가는 곳이다.
혼자의 힘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책임 당사자이다.

맛, 크기, 가격

이 얼마나 영악한가?
하지만, 또 얼마나 천박한가?

사람을 인격이 아니라, 돈, 지위로 가늠하듯,
블루베리를 그저 맛, 크기, 저가로 평가하는 짓.
이것 얼마나 천하고 얄팍하다 이르지 않을 수 있는가?

나의 을밀철학은 시장 현장에선 하등 평가 요소가 되지 못한다.
이를 난들 어이 모를까?
내가 바보인가?
하지만,
이것은 나의 농사 철학엔 하등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애시당초,
나는 상대를 의식하여 농사를 짓지 않고,
내 농사, 철학의 완성 아니 모색을 위해,
여기 서 있을 뿐인 것을. 

性本淫乱,情行浮薄。

본래 대부분의 인간이란,
본성이 음란하고,
성정, 행동은 부박한 것임이라.
아닌 척 모두 숨기고 살아들 가나,
기실, 세상이란,
모두 이런 성(性)을 씨줄로, 정(情)의 날줄로,
교직되며 어지러이 만들어져 나가는 것.

그러한즉, 유교는 성인이 나타나 이를 바로 잡기를 구하고,
불교는 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라,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온갖 선을 받들어 행하라. 
스스로 그 뜻을 깨끗이 하는 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니라.
이리 장광설 혀가 빠지도록 설하기 바쁘다.

허나, 법가 특히 한비자는,
이런 기대를 구하지 않는다.
다만 바른 법도를 두어,
그리 규율하자, 그리 할 수밖에 없다.
이리 절규한다.

도대체 성인이란 백 년에 하나만 나와도 많다.
사람의 착한 마음, 착한 행동이란,
낙숫물로 돌을 뚫듯, 지고지난한 일이다.

이런 불확실한, 아니 거의 불가능한 것에 기대를 걸지 말자.
차라리, 무색투명, 드라이한 태도를 견지하며,
법도,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 실질 집행이 가능한 세상을 구축하자.
한비자는 이리 외로운 늑대가 되어 외쳤다.

그런데, 이것도,
性本淫乱,情行浮薄。
인간의 이러한 성정 때문에,
법도는 권세가에 의해 부단히 자의로 개폐되고 만다.
구부러지고, 짜깁기 되어 넝마가 되고 만다.

이런 모습은 당대 정치 현실에서,
우리는 여전히 목도하고 있다.
저 썩을 놈의 공정, 평등, 정의의 선전술이란,
도대체가 얼마나 역겨운가?

「顧若影,則知之。」列子顧而觀影:形枉則影曲,形直則影正。然則枉直隨形而不在影,屈申任物而不在我,此之謂持後而處先。
(列子-說符)

“그림자를 돌아보면, 그것을 알지니라.
열자가 돌아보아 그림자를 보니,
형체가 구부러지니 그림자가 굽고,
형체가 곧으니, 그림자가 바르게 된다.

그렇다면, 굽고 곧은 것은, 
형체를 따르는 것으로,
그림자에게 있지 않고,
제 몸이 굽혀지고 펴지는 것은,
사물의 이치에 맡겨질 뿐,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일러 사물의 뒤, 그림자의 앞에 있는 것이라 한다.”

그래 나는 요즘 생각한다.
性本淫乱,情行浮薄。
이것은 인간의 성정이라기보다,
차라리 사물, 자연의 이치가 아닌가?

그러하다면,
실로,
성인, 부처, 한비자는,
인간이 아니고,
정녕 외계인이거나, 
뜬 구름 잡는 허랑(虛浪)한 우부(愚夫)가 아닐는지?
되지도 않을 일에.
기치 높이 들고,
목이 터져라 외치고들 있으니 말이다.

허나, 
달빛은 언제나 차고,
月亮狼 늑대는 외로운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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