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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MetaVerse)

Metaverse : 2021. 7. 8. 18:32


메타버스(MetaVerse)

가상현실(假想現實, Virtual Reality, VR)
증강현실(增强現實, augmented reality, AR),
혼합현실(混合現實, Mixed Reality, MR)

오래전부터 이런 말들이 귓등을 치더니만,
이젠 메타버스(MetaVerse, Meta+Universe)란 말도 자주 접하고 있다.

이 글은 이들에 대한 세세한 내용을 소개하는 자리가 아니다.
다만 곧잘 이들을 두고,
가상+...라고 칭하는 조어법에 대한 단상을 늘어놓고자 할 뿐이다.

가상(假想)이라면,
우선 당장 가짜라는 이미지가 추상되어 건져 올려진다.
이것 나는 대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Virtual은 그렇다 쳐도,
Meta를 가상으로 푸는 것은 더욱 엉터리라 하겠다.

기억하는가?
암호화폐(crypto currency)를 두고,
정부는 애써 이를 가상화폐라 칭했다.
발권력을 가진 저들은 도저히 이의 출현을 받아드릴 수 없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발행한 화폐 외엔,
모두 가짜란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조어를 통해 더는 따져 볼 것도 없이 무작정,
암호화폐는 무찔러 없애버려야 할 존재로 전락한다.

문재인 정권은 2017년 암호화폐를 말살하려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 얼치기들은 암호화폐를 악으로 보았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어찌 변하였는가?
이리 요살을 떨던 이들이 내년부터는,
암호화폐 거래로 발생한 양도차익에 20% 세금을 매겨,
삥을 뜯겠다고 누런 이빨 드러내고, 침을 질질 흘리고 있다.

시거든 떫지나 말랬다고,
어리석기나 하라지,
게에 탐욕스럽기까지 하지 않은가 말이다.

각설하고,
Meta를 다시 주워들고 선다.
본디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본디 그리스어인데, 다음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1. "after, behind; among, between," 
2. "changed, altered," 
3. "higher, beyond;" from Greek meta (prep.) “

여기 어디에 가상이란 뜻이 있는가?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익숙한 것 밖에 있는 것은,
미덥지 않고, 불안한 것인즉,
실제가 아니라 여긴다.

이런 의식 기제를 통해,
이제껏 거하던 자신의 인식 세계의 안녕을 확보하고,
낯선 자를 경계하며,
때론 백안시하고,
때론 폭력을 행사하는데 이른다.

나는 Meta를 가상이라 역하는 심리 태도 역시,
바로 이러한 무지와 야만성에 기인한다고 진단한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비하하고, 왕따로 내치고, 
종내는 중인환시리에 주먹을 날리기도 한다.
저 폭력성 안엔 실은 불안 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저들은 강자가 아닌 것이다.
비열하고, 불건전한 찐따들의 귀의처는,
바로 안식권역 내의 기득권이다.
이를 지키기 위해,
아무런 죄 없는 타자를 괴롭히고,
폭력을 행사하면서 위안을 구한다.

MetaVerse는 열린 마음을 가지지 않은 이에겐 낯설다.
이제껏 자신이 딛고 선 자리가 흔들린다.
그러니 무작정 ‘가상’이란 이름을 통해,
저들은 분리하고 보는 것이다.

마치 암호화폐를 두고 가상화폐라 부르는 문정권 무리들처럼.
저들의 행위 밑엔 기실 불안, anxiety가 숨어 있다.
차별을 통해, 자신의 성곽을 보다 높이 쌓고,
나머지를 배제하고, 구타하고, 쫓아내려 한다.
저, 비겁한 이들이 보이는가?

一切有為法,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應作如是觀。

‘일체 유의법은,
꿈과 같고,
환영(maya)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다.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갯불과 같다.
마땅히 이와 같이 볼지니.’

금강경엔 이런 말이 있다.
세상 모든 것이 夢、幻、泡、影이라 하였다.

헌데, MetaVerse만 유독 가상이란 말인가?
Meta란 현실을 재해석하고 재구축하려는 시도이다.
사람에 따라, 이를 싫어할 수는 있다.
사람의 사물에 대한 선호란 가지각색이니까 나무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저 해석행위에 대하여, 
누구도 말살할 권리는 없다.
인류의 문화는 따지고 보면,
공간에 대한 재해석,
시간에 대한 재평가를 통해,
점진적으로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창조적인 자기표현 행위를 이어왔다.

그런즉, Meta를 두고,
현실과 다르다고 무작정 가상이란 레이블을 붙이는 것은,
올바른 태도라 할 수 없다.
저 시도는 향후 망할 수도 있고,
새로운 문화 지평을 열어 재끼는 일보가 될 수도 있다.

기실 나는 reallusion이란 회사의 작품 내용에 대하여 친숙하다.
이 회사가 개발한 거의 모든 제품을 가지고 있다.
MetaVerse의 핵심 요소인 아바타(Avata)에 집중하여,
수십년 전부터 심혈을 기울여온 선구자적 기업이다.
(※ 참고 글 : ☞ 아바타)

초창기 제품인 It’s me야말로 상업적 avatar의 효시다.
요즘 이 회사에서 제공하는 iClone의 세계를 엿보라.

(출처 : reallusion)

처변(處變)하여 응변(應變)하는 것은,
생명 현상의 특징적 내용이다.
왜 하나의 모습만 가질 필요가 있는가?

비슈누(Vishnu)가 천계에 있다가,
지상으로 하강(下降)하여 내려오며,
물고기, 거북이, 멧돼지, 야마(羅摩) 등으로 응신한다.

변용자재(變容自在)

이 능력은 신에게만 있으란 법 없다.
이젠 인간도 자재천(自在天)이 되려 하고 있다.
예전엔 도교 등에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를 행하였다.
그들은 도를 닦아 신선이 되려 갖은 궁리를 다 트고, 수행법을 개발하였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와서 놀라운 computing power의 향상으로,
개인 pc 레벨에서도 누구라도 자재천신으로 나툴 수 있게 되었다.
이젠 수행이 아니라, computing power를 구매할 경제적 능력만 있으면 된다.

이것 놀랍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너무 어처구니없다.
신이 되는 일에,
수행도 다 필요 없다.
그저 돈만 있으면 되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그러함인데,
짐짓 조촐한 인품을 가진 인사라도 된 양, 조빼며, 
MeatVerse를 그 누가 있어 가상이라 비웃고 있는가?
과시 철 모른다 할 밖에.

이젠 누구라도 비슈누, Aranyani(새벽의 여신)은 물론,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될 수도 있다.

(※ aranyani는 여기 블로그 내 id다.)
이런 대자재한 세상을 computing power를 갖추고 경험할 일이다.

아울러 예상하거니와,
MetaVerse 세상에선 암호화폐로 거래가 진행될 것이다.
(아니 이미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기존 화폐는 애써 쓰려 하여도 너무 불편하여,
서서히 역사의 뒷편으로 퇴장되고 말 것이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는,
저 얼치기 문재인 정권을 되우 나무라지 않을 수 없다.
그저 법전만 바삐 달달 외웠을 뿐,
세상에 대한 이해도, 미래에 대한 전망도 부재한,
저 철부지 무리들.
 
금강경은,
현실 자체가 이미 夢、幻、泡、影이라 하였음이다.
별도로 가상이 따로 있다 할 것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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