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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접몽(胡蝶夢)과 대수(大數)

Metaverse : 2021. 8. 24. 14:54


호접몽(胡蝶夢)과 대수(大數)


昔者莊周夢為胡蝶,栩栩然胡蝶也,自喻適志與!不知周也。俄然覺,則蘧蘧然周也。不知周之夢為胡蝶與,胡蝶之夢為周與?周與胡蝶,則必有分矣。此之謂物化。
(莊子 齊物論)

“어느 날, 장주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다.
훨훨 나는 나비가 되어 절로 즐거울 뿐, 자신이 장주임을 몰랐다.
문득 깨어보니, 자신은 틀림없는 장주였다.

장주가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 가운데 장주가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장주와 나비 사이엔 뚜렷한 구별이 있다.
이를 일러 物化라 한다.”


과연 그 누가 있어,
장주와 나비 사이에 경계를 긋고,
서로 다르다 말할 수 있음인가?

그럼, 여기 등장하는 物化란 무엇인가?

方以類聚,物以群分,吉凶生矣。

‘도는 같은 종류끼리 모이고,
사물은 무리로써 나누어지며,
길흉이 생긴다.’

일자一者 또는 태극에서 나와,
새가 되기도 하고, 물고기도 되고, 짐승이 되는 법.
이를 분물(分物)이라 한다.

이리들, 성명(性命)도 다르고, 형체도 다르며,
서로 떨어져 불통하여 만물로 나뉘게 된다.

그러니까, 여기 物化에서 物이란 곧 만물을 뜻한다 하겠다.
구체적 실체가 있는 실재인 바,
그리 생하게 되는 양태를 물화(物化)라 하고,
그게 변화는 추세를 일러, 물세(物勢)라 하며,
그 사물의 법칙을 물칙(物則)이라 한다.

(beauty in the glass)

증강현실(增强現實, AR, augmented reality) 영화를 하나 보자.

주인공 남자가 안경을 쓰자, 
거긴 새로운 세계, 새로운 개체(entity)가 나타난다.
이것 역시 物化다.
AR 속이라 한들,
저것은 구체적 실재가 아니라 강변할 일이 아니다.
장주와 나비,
현실과 꿈은 상대적인 것.
절대적 잣대로 나눌 수 없다.

설문해자(說文解字)를 보면,
物을 두고 이리 풀고 있다.

萬物也。牛爲大物。牛爲物之大者。故物从牛。
天地之數起於牽牛。
周人以斗、牽牛爲紀首。命曰星紀。自周而上。

‘物은 만물이다.’
物化라 할 때,
장주, 나비 가릴 것 없다.
저 영화 속의 펠릭스(남자), 앤(부인), 어기(애인) 
이들 역시 物化의 실체, 실재이다.

이제, 物은 상대/절대, 구체/추상을 넘나들며,
모든 entity를 지칭할 뿐인 것을 알 수 있으리라.

萬物也。牛爲大物。

만물은 소牛고, 소는 크다.
(※ 주위에 소처럼 큰 것이 또 있으랴?
그런즉, 고인들이 소에 빗댄 것.)
그런즉, 만물 각각은 크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부처는 일찍이 이 경지를 이리 말하였다.

북두칠성은 별들의 우두머리다.
이를 수장으로 삼고 만물이 돌아드는 모습을 수(數)로 표출하였다.
이는 실로 고도의 추상화 작업이라 하겠다.
이를 고인들은 일러 천지대수(天地大數)라 하였다.
그런즉 物化란 곧 數化로 바꿔 말하여도 가하다.

컴퓨터는 이진수(binary number)로,
사물을 분절하고, 이치를 절개하여,
computerized된 세계를 구축하였다.

VR(Virtual Reality, 假想現實), 
AR(Augmented Reality, 增强現實), 
MR(Mixed Reality, 複合現實), 
XR(Extended Reality, 擴張現實),
SR(Substitutional Reality, 代替現實)

이들은 기실 모두 대수大數로 돌아간다.
주의할 것은 大數라 하여 그저 단순히 큰수로 이해하여서는 곤란하다.
이는 위대하다, 대표한다, 원리적이다, 추상적이다, 구체적이다 ...
이런 함의를 갖고 있다.
(이는 마치 일본어의 御와 비슷한 구석이 있어.
가령 御茶おちゃ, 御飯ごはん 등의 용례에서 보듯이,
존경, 미화의 접두사로 역할하고 있다.

그저 茶, 飯하면 그뿐일 터인데,
문득 멈춰 서서,
그 앞에 御를 붙여 읍하며, 삼가는 예를 차리는 태도가
느껴지는가?

大 역시 무작정 크다는 의미로 새길 것이 아니라,
기본적이다, 중요하다, 위대하다, 아름답다 ....
등의 의미를 길어올리는 것이 올바른 태도라 하겠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한다고 할 때,
그냥 코딩coding한다고 말하는데,
여기 code란 우선 급한 대로 기호, 암호 정도로 이해하면 좋겠다.
어떤 대상을 기호화, 암호화 한다는 것은,
곧 숫자화 한다는 말이며,
대상의 성질이 양적이든 질적이든.
일단은 필연적으로 양자화(量子化) 한다는 것인데,
기실 이는 간단히 넘어갈 일은 아니다.
(※ 참고 글 : ☞ code - ①)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도대체 질적인 것이 양적 대상이 되고, 수량화 될 수 있는가?
있다 한들 정확히 계량될 수 있는가? 

길을 걸어가면서 이 물음은 수시로 문득 문득 나타나는 즉, 
쉬이 거둘 수 없다.
소싯적부터 가지고 있던 의문이다.
헌데,
과연 인간이 셈하지 않고 사물을 인식한 적이 있던가?
신조차 너의 신, 나의 신 이리 가르고 따지며 살아들 가고 있지 않은가?

入此門來 莫存知解

산문에 들어서면,
떡 하니 새겨져 있는 말씀이다.

‘이 문을 들어와서는 알음알이를 내지 마라’

이러저러한 얕은 지혜로,뭣인가 도모하려 하지 말라 이르고 계심이라.
헌데, 이 진세(塵世)의 굴러가는 삶의 이치란,
대개는 모두 양화(量化)되어 있음이니,
수로 셈하고, 경중을 재고, 이해를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속세의 삶은 이리 수에 얽매어 있음인데,
부처는 미소를 지으며,
연신 知解를 내지 말라 이르시고 계시다.

기실 고대의 상수론(象數論)이란 것도,
구체적 사물, 사태event를 추상적 관념, 개념으로서의 괘상(卦象)으로 바꾸고,
그 고도로 추상화된 entity를 數로 다시 환치하지 않았던가?
급기야 이를 넘어 數 그 자체에 신성까지 부여하기에 이르지 않았던가?

헌데,
오늘 날엔,
이게 컴퓨터 안으로 포섭되어,
놀라운 세계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것은,
모두 數 놀음이라는 것을 직시하여야 한다.
이 경이로움을 일찍이 알아버린 고인들은,
數를 大數라 고쳐 부르지 않을 수 없었음이라.
그러한즉 大란 곧 극존칭 접두사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함이니 大數는,
이제 天理, 運數, 運命, 예법, 윤리, 지모, 지혜 ... 등의 대명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R, VR, AR, MR, XR, SR

이 모든 reality는 數로 구현되고 있다.
어찌 大數 大美 大元이라 하지 않을 수 있으랴?

아아,
數學의 위대함이여.
아름다움이여.

그러함이니,
내 이르노니,
아이들에겐 수학을 가르쳐,
사물이 돌아가는 기본 이치를 그르치지 않도록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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