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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중신인(夢中神人)과 젤렌스키

소요유 : 2022. 3. 4. 13:34


몽중신인(夢中神人)과 젤렌스키

연(燕)의 소왕(昭王)이 널리 인재를 구하고 제나라를 쳐들어갔다.
일순간에 파죽지세로 몰아붙여 연나라는,
제나라 수도인 임치를 함락하고, 갖은 보물을 모조리 취했으며, 궁궐과 종묘를 태워버렸다.
제나라 성중에서 항복하지 않은 것은 거(莒)와 즉묵(即墨)뿐이었다.

이 때 제나라에 전단(田單)이란 이가 영악하여,
기발한 수단을 강구하여 제 식솔들을 안전하게 피난을 시켰다.
이런 성가가 널리 퍼지자, 
소리(小吏)에 불과한 그를 연왕은 발탁하여 장수로 삼았다.

전쟁터에서 전단은 화우지계(火牛之計)를 써서 적을 물리치는 등 맹활약을 한다.
화우지계란 실로 놀라운데, 그 장면을 간단히 스케치하면 이러하다.

此時田單趁機收集牛隻,聚得千餘隻,畫上五花彩紋、披上土黃色綢緞、牛角紮了刀牛尾綁了用油浸過的葦草。田單鑿開城牆十餘口,於夜間布置好,準備了五千士兵,準備好了就放牛出城並且點火在牠們的尾,牛隻疼痛不已,猛力向前衝,突襲燕營,齊壯士五千隨後衝殺。

소 천 마리에 갖은 채색을 하고, 누런 주단을 두른 후, 꼬리에 갈대를 매달았다.
전단은 성 담장에 10여 개의 구멍을 뚫고서는,
야밤에 5,000여 병사를 준비한 후, 소꼬리에 불을 붙이게 하였다.
그러자 고통을 견디지 못한 소들이 적진을 향해 맹렬히 돌진하였다.
연나라 진영을 향해 소들이 돌진하자,
제나라 병사 5,000이 이를 따르며 적군을 찔러 죽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실 이 못지않은 짓도 저질렀는데,
이를 떠올리며 나는 오늘 문득 우크라이나 젤렌스키를 이에 빗겨보는 것이다.

그게 무엇인가?


田單晨起謂城中人曰:「吾夜來夢見上帝告我云:齊當復興,燕當即敗。不日當有神人為我軍師,戰無不克。」有一小卒悟其意,趨近單前,低語曰:「臣可以為師否?」言畢,即疾走。田單急起持之,謂人曰:「吾夢中所見神人,即此是也!」乃為小卒易衣冠,置之幕中上坐,北面而師事之。小卒曰:「臣實無能。」田單曰:「子勿言。」因號為「神師」。每出一約束,必稟命於神師而行。謂城中人曰:「神師有令:『凡食者必先祭其先祖於庭,當得祖宗陰力相助。』」城中人從其教。飛鳥見庭中祭品,悉翔舞下食。如此早暮二次,燕軍望見,以為怪異。聞有神君下教,因相與傳說,謂齊得天助,不可敵,敵之違天,皆無戰心。
(東周列國志)

“田單(전단)은 아침 일찍 새벽에 일어나” 성안의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밤에 꿈을 꾸었는데, 상제께서 내게 이리 고하셨다.
‘제나라는 다시 국권을 회복할 것이며, 연나라는 패할 것이다.’
조만간 신인(神人)께서 우리의 군사가 되실 것이니, 전쟁에서 이기지 못할 바가 없을 것이다.’

졸개 하나가 그 뜻을 헤아리고는 전단 앞으로 조르르 달려가 나지막이 여쭈었다.

‘신이 군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말을 마치자, 급히 물러났다.
전단은 급히 일어나 그를 붙들고는 그에게 이른다.

‘내가 꿈속에서 신인을 보았는데, 그게 이것이로구나.’

이내 그 졸개의 의관을 바꿔 입히고는 군막사의 윗자리에 앉혔다.
북면하여 전단이 그를 섬겼다.
졸개가 말한다.

‘신이 실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이에 불과합니다.’

전단이 말한다.

‘그대는 아무 말도 하지 마라.’

그를 불러 이르길 신사(神師)라 하니, 이는 곧 신의 군사란 뜻이다.
매 출병할 때마다 그 신사에게 품하고 나섰다.
성중의 사람에게 이르길 이리 했다.

‘신사의 명령이라,
‘무릇 식사를 하는 이는 먼저 뜰에 조상을 제사 지내라,
그러면 조상님의 도움을 마땅히 얻을 수 있으리라.' 
성안의 사람들은 그 가르침을 따랐다.

그러자 나르는 새가 뜰 앞의 제사 음식을 보고는 모두 아래로 내려와 음식을 쪼아 먹었다.
이리 아침저녁 두 차례 하니, 연나라 군사가 이를 보게 되었다.
참으로 괴이한 일이라.
이는 신사가 그리 가르침을 내리는 바라,
이리 소문이 나서 서로에게 전해지게 되었다.

제나라는 하늘이 도우니, 적으로 삼기 어렵다.
그들을 적으로 삼는 것은 하늘을 거스르는 짓이라,
모두 싸울 마음이 없어졌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고 하는 문제 이전에,
그가 전쟁에서 이기고자 쓴 술수가 영 야릇하기 짝이 없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좋다고 마냥 그를 칭송만 할 수 없는 것이,
어느 날 제 이익에 맞으면, 제 나랏 사람, 제 벗도 가차 없이 속이고, 희생양을 삼지 않으랴?
전단 같은 이는 혹 능력이 있을지언정, 신뢰를 주지 못한다.
이런 이를 벗으로 삼는다면,
혹 위태로운 사태가 벌어졌을 때,
그가 나를 배신하고, 함지(陷地)로 떠밀 수도 있는 위험도 함께 감수하여야 한다.

억강부약(抑强扶弱) 부르짖으며,
한편에선 제 배를 돌보기 바빴던 정치인의 본색을 우리는 목격하지 않는가?

전단을 혹 전쟁에서 장수로 삼을 수는 있을지언정,
평상시에 친구로 삼기엔 꺼림직하게 느껴진다.

나는 젤렌스키를 앞에 두고,
바로 전단을 소환해 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올 1월에만 하여도 지지율이 20%대를 맴돌던 이다.
그런데, 전쟁이 나자 90%로 치솟았다 한다.
20%대라면 당시 민심이 모두 떠났다고 보아야 한다.
그랬던 것이 나라가 결딴이 나자,
외려 일순 90%로 바뀌었다면,
그는 코메디언뿐이 아니라, 마술쟁이 재간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지금 한국의 여론도 대개 그에 대한 칭송 일색이다.

하지만, 그가 군복을 입고 나타난 뉴스를 보면서,
나는 문득 전단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출처 : google 검색)

그는 코메디언 출신이라,
연출 효과에 대한 훈련이 누구보다 잘 되어 있으리라.
기실 장수가 전쟁을 잘 하려면,
군복을 벗어 던지고 노타이 차림이어야,
몸이 가벼워 전략, 전술을 잘 짜고, 지휘를 제대로 할 수 있다.
운주유악(運籌帷幄)이라 하지 않던가?
도대체 장수가 소총을 잡고서야,
어찌 천만 병사를 제대로 다룰 수 있으랴?

公知其一,未知其二。夫運籌帷幄之中,決勝千里之外,吾不如子房;.....

고조본기에 나오는 말이다.
고조가 장량을 두고 운주유악(運籌帷幄) 운운하고 있다.
이는 장막 안에서 산가지를 놀린다는 말인데,
천리 밖의 일을 헤아려 승리를 이끄는 데 있어,
자신이 장량에 미치지 못함을 말하고 있는 장면이다.

게다가, 군대통수권자는 전시 상황하에선,
혹 필요불가결 전선 시찰일지라도 동선을 숨기고 극비활동을 했어야 한다.
지하 벙커(bunker) 같은 보호시설에 처하여 신변 안전을 기하여야 한다.
공개된 언론에 모습을 자주 드러낼 정도로 가벼히 처신할 위치에 있지 않다.

우크라이나를 쳐들어온 것은 명백히 푸틴이다.
실로 천인공노할 흉악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다.
하지만 이를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수단과 방책을 강구할 위치에 있는 이로서,
젤렌스키를 빼놓고 다른 이를 거론할 수 없다.

선거 때만 되면,
정치인들은 장터에 가서 오뎅을 입에 물고 사진을 박는다.

저것이 한낱 쇼임을 모르는 이가 없다.
저것으로 거두어지는 민생 경제의 실질 효과는 전무할 것이다.
하지만, 정치인이 부단히 저 짓을 하는 것은,
저것이 일으키는 정치 선전 기대 효과를 믿기 때문이 아니랴?

푸틴이 나라를 짓밟고 나서야,
젤렌스키가 군복을 입고 소총을 든다한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
전쟁에서 무슨 효험이 있으랴?

이미, 국토는 전쟁터로 바뀌고,
건물은 박살나고,
사랑하는 가족은 죽거나 흩어지고 말았다.

자고로 정치란,
나라를 태평케 하고, 
인민들을 편안케 하는 것이 제일의적 과제이다.
이를 지켜내지 못하였다면,
그런 위정자는 천고의 대죄인임에 틀림없지 않은가?

전단의 예에서 보듯이,
대중은 몽중신인(夢中神人)을 곧잘 믿는다.
따라서 젤렌스키의 군인 코스프레도 일응 효과를 일으킬 수는 있으리라.

하지만, 그가 애초 푸틴의 망동을 막지 못했던 과오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을,
나중이라도 잊지 말고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수많은 사람이 재산을 잃고, 아까운 생명을 잃었다.
이 현전하는 고통을 누가 있어 대신해주랴?

그가 입은 군복이, 손에든 소총이,
결코 인민의 슬픔을 위로하지 못하며,
그의 과오를 덮을 수 없다.

우선은 급한대로 한데 뭉쳐 적군을 몰아내야 하겠지만,
언제고라도, 시시비비를 가려, 
천하에 밝은 도리를 바로 세우고,
오늘을 엄히 경계하여야 하리라.

참으로 기가 차지 않는가?
20% 지지율이 90%로 바뀌는 이 마술.
실제 90% 책임을 져야 하리로되,
이게 물어져야 할 바로 그 사태 현장에서,
거꾸로 뒤집혀 칭송이 되고 만다면,
대중은 몽중신인(夢中神人)을 믿고 따른다 할 밖에.

따라서,
오뎅은 영원하고,
군복과 소총은,
정치인의 장중보(掌中寶)다.

인민 대중은,
신인(神人)의 현전을 구한다. 
없다면, 몽중에서라도 신인을 갈구한다.

고장난명(孤掌難鳴)
외 손바닥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배우는 관객과 함께 한다.

아아,
미망이어라.

사타구니에 뜨거운 국을 쏟고서야,
아 뜨거워 외치는 인민 대중들.

가족을 읽고, 집이 무너지게 한, 
그 책임 당사자를 눈앞에 두고도,
몽중신인(夢中神人)이라 떠받드는 희극.

코메디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인민의 삶은 코메디의 대상이 될 만큼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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