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왜(嘴歪)
공화국 수장의 열 지어 터지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언사를 마주하자,
내 한 생각 일으키고 만다.
사람이란 한두 번 실수를 하면,
대개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단속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조심하여도 아니 된다면,
이는 그의 존재 조건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어떤 자의 글을 읽었던 적 있다.
“관상이니, 사주팔자니, 손금이니 하는 소리들을 일고의 가치조차 없는 개소리들로 치부해왔다.”
그러자 나는 즉각 여기 문제가 있음을 일러주었지.
특히 관상은 내가 좀 공부가 되어 있으니 말 할 수 있었다.
가령 사과 하나를 사고자 하여도,
이리 돌려보고 저리 젖혀보고 사지 않던가?
도대체 相을 여의고 취하는 것이,
이 세상에 그리 흔하든가?
물론 면상불여심상(面相不如心相)이란 말도 있듯이,
얼굴 꼴보다 마음보가 더 중요하다는 소리도 있기는 하다.
‘有心無相,相隨心生;有相無心,相隨心滅。’
‘마음이 있어도 상이 없으면, 상이 마음을 따라 생기고,
상이 있어도 마음이 없으면, 상은 마음을 따라 멸한다.’
게다가 이 경귀에 이르면 상이란 쓸데없고,
마음이야말로 으뜸이라 기염을 토하는 얼치기가 생겨나고 만다.
우리네 속담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이란 게 있다.
사람의 마음을 어찌 바로 알 수 있겠음인가?
하지만, 저 글을 거꾸로 잘 따라가 보면,
새로운 소식을 깨닫게 되고 만다.
相隨心生, 相隨心滅이라,
다행이 마음은 거죽 상으로 드러나게 되는 법.
그러니 독심술이니, 췌마법이란 게 있는 법이 아니겠음인가?
아아, 그러함이니 관상이란,
깊고 깊은 심해, 지중에 찔러 넣는 탐침과 같은 것이라,
이로써 능히 바닷 속, 지하의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얼치기들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마음이 다라고 외치지만,
막상 그곳에 도달하는 방법은 아지 못하고,
그저 相이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악이나 쓰고, 자빠지고 만다.
대저, 고대엔 相學이란 제왕학 중 으뜸 자리를 차지하였었다.
그 이치를 모르는 바, 저리들 철모르는 헛소리를 지른다.
사주팔자 역시 매한가지다.
나 역시 사주팔자를 말학이라 치부하지만,
저들의 고심참담하니 파내려가는 명리학(命理學)의 방법론이란,
그게 그리 간단하니 맹랑한 짓이 아님이라,
그저 마냥 헛되다 치부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나처럼 명리학의 운명 감정술단을 깊게 신뢰하지는 않더라도,
인생 양태를 저리 깊고 넓게 분류하고,
전개 과정을 추적하며, 상호 연관 관계를 따져 드는 모습을 보자하면,
저 진지함과 열정이 얼마나 놀라운가 알 수 있으리라.
어찌 그 배움을 도타히 하지 않을 수 있으랴?
오대말 송초의 도학가이자 점복사인 陳希夷의 다음 말씀을 들여다 보라.
心者貌之根,審心而善惡自見。
行者心之表,觀行而禍福可知。
‘마음은 겉꼴의 뿌리이니, 마음을 살피면 선악이 절로 드러난다.
행동이란 마음의 외표(外表)인 바라, 행동을 잘 보면 화복을 가히 알 수 있다’
상서(相書)의 꼭대기에 이르면 단지 얼굴의 꼴만을 두고 논하지 않는다.
소위 相由心生이라, 즉 상이란 마음으로 말미암아 형성된다고 말한다.
사람은 곧잘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기세를 올리며 부지깽이 들고 무작정 달려나가는 법이다.
‘나 그런 것 몰라도 지금까지 잘 먹고 살았어.’
제 무지가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살비듬 툭툭 떨어지는 배를 까내어 두드리며,
고약한 냄새나는 누런 이빨 드러내고 시시닥거리면,
좀 면괴스러움이 가시기라도 하는 것인가?
상서(相書)엔 오래전부터 이런 말이 전해지고 있다.
嘴歪之人,言詞不實。
‘입이 삐뚤어진 사람은 언사가 부실하다.’
물론 구안와사(口眼喎斜)처럼 병이 온 경우는 예외다.
내 관상으로 사람을 풀어내는 짓을 삼가고 있지만,
오늘은 상학 일반 한 조각을 잠시 소개하는데 뜻을 두었다 이해할 일이다.
邪正看眼鼻 眞假看嘴唇라고,
즉 삿되냐 바르냐를 살피려면 눈과 코를 보고,
진짜냐 가짜냐를 따지려면 입, 입술을 본다 하였음이다.
상서엔 마음이 바르지 못하는 것은, 뇌리에 귀신이 준동하기 때문으로 본다.
그런 자는 바르지 못한 짓을 저지르기 위해 종종 잘못된 행동을 한다.
말이 부실한 사람은,
평소에 입이 삐뚤어져 있을 때는 물론이지만,
때론 말할 때만 삐뚤어져 있어도 역시 그러하다.
대개 입이 삐뚤어지면,
자연 콧대도 틀어지고, 심하면 눈까지 짝이 어긋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상이 아주 흉하게 변하고 만다.
(출처 : 網上圖片)
上唇主情 下唇主慾이라고,
윗입술은 감정을, 아랫입술은 욕심을 주관한다 하였다.
내 오래 관찰하건대,
대체로 맞더라.
계집사람 중에 아랫 입술을 까뒤집는 수술을 받는 이도 있다.
모 연예인도 이 짓을 하였는데,
지들 딴엔 저게 섹시하게 보인다 생각하겠지만,
택도 없는 소리다.
욕심 사납고 천박하기 그지없는 상을 스스로 만드니,
어찌 딱하다 하지 않을쏜가?
속담에,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 했다.
하지만, 입이 삐뚤어지면 말도 부실하다 이르고 있음이다.
아아,
嘴歪之人,言詞不實。
상학의 가르침이란 얼마나 단정(斷定), 준엄한가?
오늘 부실한 말을 앞에 두고,
탄식을 금치 못하고 있음이다.
내 옛 상서에 입각하여 잠시 썰을 풀었으되,
觀相 不如心相, 心相 不如用心이라고,
역시나 상은 마음의 본 모습을 못 따르고,
마음보다는 구체적인 행동이 중요하지 않으랴?
(※ 참고 글 : ☞ 나는 나)
그러함이니,
혹 상이 그르다 하여 낙심하지 말고,
착한 사람 노릇하며 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