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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횡사(非命橫死)

소요유 : 2022. 11. 2. 15:38


이태원 할로윈 축제 압사 참변
유명을 달리하신 이들께 삼가 국화꽃 한 송이를 올린다.

제 명에 죽지 못한 것을 흔히 비명횡사라 이른다.
차제에 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둔다.

(출처 : 圖片來自網絡)

비명횡사(非命橫死)

비명과 횡사는 무엇인가?

橫은 원래 난목(闌木)을 일컫는다.
즉 울타리를 가로지른 나무를 뜻하는 것이다.
사기에 나오는 합종연횡(合從連衡)에서 
횡(衡)은 본디 천칭(天秤) 저울의 가로대를 말하기도 하고,
원(轅) 즉 마차의 끌채 앞에 가로지른 막대를 의미하기도 한다.
(※ 衡 : 저울대 형, 가로 횡)

시간은 종(縱)으로 흐른다.
그런데 이를 across(橫)하여 무엇인가가 급자기 흐름을 interupt(絶)하면,
생이 다하고 命이 끊긴다.
이게 횡사란 자의에 함축된 의미다.

요즘 심심하다는 뜻도 모르는 다리 짧은 아이들 같으면,
횡하니 죽는 것을 뜻한다 새기겠지?

무착(無着, 阿僧伽, Asanga), 세친(世親, 婆藪槃豆, Vasubandhu) 등의
대논사를 필두로 대승불교의 수많은 논사들이 펴놓은 논(論)은,
실로 세상 사람들이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그 궁극까지 추구하였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때는 정말 시시콜콜한 것까지 여러 분파(分派) 간에 대립, 논쟁을 벌였으니,
도대체가 그 정력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진리를 파지(把持)하기 위한 열렬한 구도행의 결과인가?
물론 당연히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가능하였던 이유 중의 하나를 유한(有閑)에서 찾는다.
무착이나 세친은 바라문 출신이며,
귀양 가서 수많은 저작을 남긴 정약용은 많은 노비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들이 살아남기 위한 생업에 급급하였다면,
제 아무리 머리가 명석하였다한들 큰 업적을 이루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 여간 역설적이지 않다.
공(空)을 말하고, 의(義)를 논하되,
현실에선 안정적 물적 토대에 의지하고서야 그 소론을 힘껏 펼 수 있다.

요는 노예, 노비 등의 하부구조, 그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아울러 신행(信行)을 함께 하는 이들의 협조내지는 협력을 왜 아니 제외하랴?
그것은 그러하고 이제 횡사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이부종륜론(異部宗輪論)에 따르면,
無非時死 先業所得이라 하였다.
(※ 異部宗輪論 是記載部派佛教時期各派教義異同點的論書,題為世友菩薩撰。)

이에 대한 규기(窺基)의 술기(述記) 내용을 보자.
(※ 窺基 : 당나라 법상종 인물, 김용 소설에 등장하는 자은대사(慈恩大師)가 그다.)

諸非時死皆先業得。無由橫緣。有非時死。過去曾行此橫緣故。今方橫死。非無先業。今橫有果。其轉壽業作福業故。而便短壽者。舊有先業。今由現緣。
(※ 先業 : 宿業, 지난 세상에서 지은 업)

때 없이 죽는(非時死) 모든 이는 모두 전생의 업보이다.
급작스런 연으로 그러한 게 아니다.
비시사(非時死)가 있다면, 
과거에 이미 행한 것이 금번의 급작스런 원인이 되는 게다.
금방 횡사하는 것은 전생의 업보가 아닌 것이 없다.
금번의 횡사는 결과인 게라.
수명의 업이 변하면 복업을 짓는 연고가 된다.
그런즉 문득 단명하는 자는 모두 전생의 업이 있는 게라.
이게 현재의 인연을 짓는 까닭인 것이다.

그런데 유부(有部)에서는 이와는 반대다.
즉 비시사(非時死)를 주장한다.
대승불교 역시 비시사를 주장한다.

瑜伽論云。云何死。謂由壽量極故。此有三種。謂壽盡故。福盡故。不避不平等故。云何不避不平等故死。如世尊說。九因九緣。未盡壽量而死。何等為九。謂食無度量。食於不宜。不消復食。生而不吐。熟而持之。不近醫藥。不知於己。若損若益。非時非量。行非梵行。此名非時死。(習字函第一卷)。

유가론(瑜伽論)에 이르길,
어찌 죽는 것을 일러 목숨의 양이 극에 다다랐다 하는가?
여기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수명이 다하거나, 복이 다하는 경우,
그리고 불평등을 피하지 못한 경우.

불평등을 피하지 못한 경우란 무엇을 이르는가?
세존이 설하셨듯이 아홉 가지 인(因)과 아홉 가지 연(緣)에 따라,
수명이 다하지 않고 죽는 경우이다.
무엇이 아홉인가?

먹는 것에 도량이 없는 것,
마땅치 않게 먹는 것.
소화도 되지 않았는데 다시 먹는 것.
날것인데도 뱉지 않는 것.
익었는데도 가지고 있는 것.
의약품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것.
자기에 대해 아지 못하는 것. 
손해가 되고 이익이 됨을 아지 못하는 것.
제 때도 아니고, 양에 맞지 않게 범행(불도의 수행)을 행하지 않는 것.
이를 비시사(非時死) 즉 때에 맞지 않는 죽음이라 이른다.

智度云。橫死者謂無罪而死。或壽未盡。錯投藥故。或不順藥法。或無看病人。或飢渴寒熱等夭命。是名橫死。
(形字函第六卷)。

지도(智度)에 이르길,
횡사자는 죄가 없음에 죽는 것을 말한다.

혹은 투약에 잘못이 있는 고로, 수명이 다하지 않았다든가,
혹은 약 쓰는 법이 순리를 벗어났거나,
혹은 병자를 돌보지 못하였다든가,
혹은 기갈이 들고, 춥고 더워 요절하는 경우,
이를 이름하여 횡사(橫死)라 한다.

그러니까, 비시사(非時死)란 전생의 업보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다만 아홉 가지 인연에 따라, 죄 없이 죽는 것을 이른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현장이 역한 약사본원공덕경에 등장하는 아홉 가지 횡사를 알아본다.

(三)玄奘譯之藥師本願功德經舉出九種橫死(又稱九橫、橫死九法、九橫死),即:(1)患病不得醫藥而死。(2)觸犯國法處死刑而死。(3)荒淫冶遊,而為非人(惡鬼等)奪取精氣而死。(4)火焚而死。(5)溺水而死。(6)為諸惡獸噉死。(7)從絕壁、山崖墮死。(8)毒死。(9)饑渴而死。

(1) 병이 났는데 의약이 없어 죽는 것,
(2) 사형에 해당되는 국법에 저촉되어 죽는 것.
(3) 황음하여 놀아나거나, 사람이 아닌 즉 악귀 등에 정기를 빼앗겨 죽는 것.
(4) 불에 타 죽는 것,
(5) 물에 빠져 죽는 것,
(6) 나쁜 짐승에 잡아먹히는 것.
(7) 절벽,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는 것.
(8) 독에 죽는 것.
(9) 기갈로 죽는 것.

橫死
指非因往世之業果致死,而係遭意外災禍死亡者,稱為橫死。又作非時死、不慮死、事故死。

횡사란 지난 세상에 지은 업으로 인한 과보로 죽는 것이 아닌 것을 지칭한다.
의외의 재화를 만나 죽는 경우 횡사라 한다.
또 비시사(非時死), 불려사(不慮死), 사고사(事故死)라 하기도 한다.

***

비명 역시 고인들이 이미 연구를 많이 해두었다.

비명(非命)

今用執有命者之言,是覆天下之義,覆天下之義者,是立命者也,百姓之誶也。說百姓之誶者,是滅天下之人也」。然則所為欲義在上者,何也?曰:「義人在上,天下必治,上帝山川鬼神,必有幹主,萬民被其大利。」
(墨子 非命上)

“지금 운명이 있다는 말을 따른다면,
이는 천하의 의(義)를 뒤엎는 일이다.

천하의 의를 뒤엎는 자들은,
이 운명을 내세우는 자들이다.
백성들을 근심케 하는 것이다.
백성들을 근심케 하는 것을 기뻐하는 자들은
천하의 사람들을 멸망케 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인이 위에 있기를 바라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르길.
의인이 위에 있으면, 천하가 반드시 다스려 지고,
상제와 산천의 귀신에게, 
반드시 이를 제사 지낼 종주(宗主)가 있으며,
만민에게 큰 이익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義人在上이라 하였음인데,
지금 천하에 의인은 없다.

上帝山川鬼神,必有幹主

하늘과 산천 귀신에게,
반드시 제사를 지낼 주관자인 종주(宗主)가 있다 하였음인데,
이 대명천지 밝은 세상에,
기껏 제 손바닥에 왕짜나 새긴 인간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천하에 욕심꾸러기만 그득하니,
귀신이 아니라, 자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음이니,
이러다 산천 귀신들은 다 굶어 돌아가실 판이다.

義人在上,天下必治

한편,
억강부약(抑强扶弱)한다며,
연신 약을 팔던 이가,
이제 와서 보니,
그 실체가 심히 의심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修正其身,以待天命,此所以立命之本也。

저 자신을 바로 닦은 후에, 이로써 천명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게 立命의 본(基本)이다.
헌데, 자신의 뱃구레에 욕망을 그득 채운 자들이,
자신이 명(命)의 당체, 주관하는 주체라 외치고 있다.
썩을 것들.

애초에, 의인을 윗사람으로 모시길 기대할 일이 아니다.
천하엔 이미 의인이 다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기실 ‘모신다’, ‘기다린다’라는 말은 틀렸다.
이런 썩어빠진 정신 상태이기 때문에,
불의한 이와 한 통속으로 놀아들 나고 있는 것이고,
난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것이다.

불의한 이들은 자신이 곧 명을 주관하는 귀신이라며 떠들고,
어리석은 이들은 있지도 않은 사이비 귀신을 모시겠다며,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동서로 날뛰고들 있는 것이다.
썩어빠질 것들.
(※ 참고 글 : ☞ 서문표와 하백 귀신)

今天下之士君子,中實將欲求興天下之利,除天下之害,當若有命者之言,不可不強非也。曰:命者,暴王所作,窮人所術,非仁者之言也。今之為仁義者,將不可不察而強非者,此也。

“지금 천하의 군자된 선비가,
진실로 천하의 이익을 일으키고, 
천하의 해악을 없애려 한다면,
운명이 있다는 말 따위는,
힘써 부정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다.

이르길.

‘숙명론이란 폭군이 만들어낸 것이며,
궁색한 이들이 말한 것이지,
어진 사람들의 말이 아니다.
지금의 어짐과 의로움을 말하는 사람들이,
잘 살피어 힘써 부정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까닭은 이 때문인 것이다.’”

그러함이니,
오해를 살까봐,
내가 내뱉고 싶지 않은 말이나,
각자도생(各自圖生)할 밖에.

다만, 각자도생이란 남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삶만 돌보라는 말로 알아 들을 일이 아니다.
이제 내 다시 정의하거니와,
자신의 양심을 돌보란 말로 새겨야 한다.

본래의 의미인,
난이 일어났은즉,
국가나 사회가 돌볼 형편이 아니니,
각자는 모두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알아서들 살아남거라.
이런 구질딱스런 말이 아니다.

정치모리배들 일색인 쓰레기장에서,
의인을 찾을 것이 아니라,
정작은 기어이 자신이 의인이 되고 말 일이다.
이 추접스러운 현실에서,
밖에서 귀인, 초인을 구할 일이 아니라,
자신부터 잘 살피고, 양심을 밝혀,
인의지사(仁義之士)로 나아가는 모습으로,
새겨둘 일이다.

아,
그러함이니,
과연 의인이란 어디 숨어 계시온지?
이런 기대는 도대체가 애시당초 틀려먹은 것이다.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천고 뒤의 초인을 기다리다니?
시인은 너무 안일하고, 나약하구나.

오늘을 사는 시민들은,
초인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정작은 자신이 초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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