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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침무우(高枕無憂)

소요유 : 2023. 4. 3. 12:05


고침무우(高枕無憂)

고침단명(高枕短命)이란 말은 한국에선 곧잘 듣는다.
하지만, 과연 베개를 높이 하고 자면 단명하는지는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내가 소싯적 역일(曆日)에 따른 주가 수익률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가 조사한 적이 있다.

태양이 늘 새롭게 아침을 밝히고, 
저녁에 놀을 물들게 하는 한 시간의 경과인 역(曆)이 없을 수 없다.

“주가는 출렁인다.(Stocks will fluctuate.)”

이 문귀는 주가의 향방을 묻는 질문에 대한 모르간(J.P.Morgan)의 유명한 대답이다. 
미래의 주가가 오를는지, 내릴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어쨌건 움직일 것만은 확실하다라는 의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주가의 향방에 대하여 진실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만일 특정 역법일에 대하여 개별적인 특성이 체계적(systematic)으로 발견되고 있다면, 
이들을 활용하여 차별적인 투자 수익을 확보하는 전략을 구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 코딩을 직접하여, 
한국 시장에서 과연 역일에 다른 체계적 특성이 발견되는가 조사하였다.
천간, 지지, 음양일, 요일, 12달 등에 대한 통계학적 분석을 시도했다.
그 결론은 오늘의 주제가 아닌즉 약한다.

그러던 와중 다음과 같은 싯귀를 하나 접했었다.

偶來松樹下,高枕石頭眠。山中無曆日,寒盡不知年。
(太上隱者答人詩)

우리네가 아는 고침단명과는 다르게,
고침은 외려 편안한 상태를 그리는데 주로 상정되었다.
高枕出塵埃라, 
고침은 도리어 출세간의 청정한 삶의 상징어였다.
하기사 근심이 많고, 욕심이 그치지 않는 이가 어찌 베개를 높이고,
편히 잘 수 있으랴?

오늘 기사 하나를 접하고는 고침무우(高枕無憂)란 고사를 다시 떠올렸다.

(출처 : viewsnnews)
   
고침무우란 풍훤(馮諼)과 맹상군(孟嘗君)에 얽힌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풍훤은 맹상군이 풀어놓은 채권을 회수하러 지방에 파견되었다.
하지만, 채무자 격인 민초들의 삶이 고단한 것을 알고는,
외려 채권 문서를 불지른다.
그러자 지방민들은 만세를 부르며 맹상군을 칭송하였다.
빈손으로 돌아오자,
맹상군이 노하여 추궁하자 풍훤은 이리 말하고 있다.

君云視吾家所寡有者。臣竊計,君宮中積珍寶,狗馬實外廄,美人充下陳。君家所寡有者以義耳!竊以為君市義。~~
狡兔有三窟,僅得免其死耳。今君有一窟,未得高枕而臥也。請為君復鑿二窟。
...
(戰國策)

요지는 이러하다.

(맹상)군은 금은보화, 말도, 미인도 넘치도록 충분히 가지고 있다.
다만 義가 부족하다. 
그런즉 내가 군을 위해 義를 훔쳐 돌아왔다.
교활한 토끼는 굴 셋을 파놓는다 하였다.
군은 이제 굴 하나를 얻었은 즉, 
高枕而臥 하기엔 아직도 부족하다.
그리고는 나머지 굴을 더 팔 것을 청한다.

(출처 : 圖片來自網絡)

아아, 저 기사를 보면, 박원순 부인이 지인들에게 이장을 고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순간 고침무우란 고사를 떠올리고 만다.
이장은 꼬박꼬박 남편을 시장님이라 부르는 고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작은 부인 자신, 그리고 혹 혈육의 명예를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이 떠오르고 말았다.

멀쩡하던 사람이 스스로 죽었다.
그렇다면 그러할만한 까닭이 있었다 할 밖에.
죽은 이는 이젠 말이 없는데,
가족은 외려 명예를 되찾겠다고 모란공원을 빌리고 있다.

풍훤은 맹상군을 위해,
竊以為君市義라,
채권을 불사르고 의를 훔쳤다고 당당히 외쳤다.
하지만, 高枕而臥라 행여라도 베개를 높이 베고 누워 잘 생각을 하지 말라 고한다.
아직 굴 둘이 남았음이니.

모란공원 묘역을 빌린 박원순은 과연,
高枕而臥하며 편안히 누워 잠을 잘 수 있으랴?

내가 보기엔 이것은 미지수이지만,
다만 확실한 것은 이제 가족들은 高枕而臥할 수 있겠다며,
한시름 놓지나 않을까 싶구나.

아아,
하지만, 풍훤은 채권을 불살라 義를 훔쳤음인데,
과연 박원순 가족들도 義를 훔쳤다 이를 수 있겠음인가?

竊義라 의를 훔치는 데는,
내가 가진 것을 버림으로써 가능하다.
하지만, 내가 잃은 것을 남의 것을 빌리는 것으로,
과연 義를 일으켜 세울 수 있단 말인가?

信近於義,言可復也;恭近於禮,遠恥辱也
(學而)

‘믿음이 의에 가까울 때, 언약의 말이 지켜지고,
공경은 예에 가까울 때, 치욕을 멀리할 수 있다.’

君子食無求飽,居無求安

아아, 군자란 식무구포라 배 부르도록 먹지 않는다 하였음이며,
편안한 자리를 구하지 않는다 하였음이다.

지금 농장 안은 꿀 냄새가 안개처럼 자욱이 흐른다.
매화, 살구, 자두, 앵두꽃이 피어오르며,
꿀샘을 채우고 넘쳐흘러 온 세상을 적시고 있다.
조금 있으면 복숭아꽃이 피어오르며,
분홍빛으로 유혹할 것이다.

아아, 명예를 탐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저 꿀 안개 자욱한 눈빛, 도색(桃色) 바다에 잠길 일이다.
내가 살면서 이제 얼마나 더 이런 황홀경에 빠질 수 있으랴?
한 해 한 해 겨우 만나는 짧은 봄날의 오늘들이 귀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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