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나, 건드리지 말라

소요유 : 2023. 4. 14. 13:28


나, 건드리지 말라.

농장 건너편에 무허가 건물 2채, 그리고 일반 가옥 1채 도합 세 채가 있다.
그 사이에 난 도로는 거지반 우리 소유의 토지다.

예전에 우리 밭 둘레에 전봇대가 하나 서 있었는데,
이게 흉물이었거니와 작업시 걸치적 거렸다.
하여 수년 전 그것을 아래쪽 도롯가로 옮겨 갈 것을 한전에 요청하였다.
이게 당연 수락되었고 공사가 진행되었다.
옮겨 갈 곳도 우리 소유의 땅임이니.

그러자 지적한 그 집들에서 벌 떼같이 사람들이 나와,
전봇대 옮기면 물길이 변해 자신들 쪽으로 빗물이 들어올 것이라며 난리를 쳤다.
옮겨 갈 전봇대 근처엔 도랑이 있어, 별반 염려가 없어 보였고,
공사 담당자도 절대 넘칠 염려는 없다고 이야기하였음에도,
씩씩거리며 게거품을 물고 환장들을 하였다.
공사가 끝난 지금까지 한 번도 물이 넘쳐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

자자, 이번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농장 밖에서 요란한 착암기 소리가 난다.
그래 가서 살펴보니 도로를 마구 파헤치고 있다.
내가 나서서 여기 사유지다라며 일단 공사 중지를 시켰다.

공사 담당자가 나와 이야기를 텄다.
오수관을 묻는데, 문제의 도로 한 가운데에 집수 맨홀을 심겠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세 집에서 정화 시설도 없이 오수를 강(한탄강)으로,
그냥 내보내고 있는 것이 아주 못마땅하였으나,
그냥 지켜만 보고 있었을 뿐, 어찌할 수 없었다.

하여 내가 충고하였다.
도로 아래 문제의 곁가지로 난 도로가 그 할머니 땅이거나, 
그쪽 서가네 문중 땅이라고 하니, 먼저 그를 타진할 일이다.
이리 일러주었다.

문제의 그 할머니는 우리 땅을 20년간 무료로 사용하였다.
그 너른 땅을 혼자 말이다.
그러던 것인데, 그 할머니 집 옆에 있는, 한때는 공동우물로,
그리고 지금은 폐정인 우물을 사용하기 위해 내가 시설 설치와,
할머니 입막음용으로 기 백만 원을 썼다.

그러한 것인데, 시설 설치한 이듬해 할머니가 내게 나타나,
의기양양 물세를 내라 하였다.
지금 나는 그 우물을 사용하지 않고 수도로 농사를 짓는다.
농사를 짓지 않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한이 있어도,
저 흉측한 인간에게 단 1원도 물세를 줄 수는 없었다.

그래 우리는 지금 수돗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여름철 잠깐 블루베리에 수돗물로 관수하는데,
그리 사용하여도 수돗세가 저 할머니가 요구한 물세의 반의 반의 반도 아니 된다.

우물이 자신의 것도 아닌데,
저런 패악질을 자행하다니,
아아, 인심이란 수백 길 감은 물처럼 시꺼멓기도 한 것이다.
흉측하다.

공사업자에게 다시 일러두었다.
맨홀은 그리 설치하더라도, 필경 관로는 우리 땅을 거쳐야 할 터다.
내 저들의 행악질이 괘씸하여 땅을 내줄 마음이 있을 턱이 없으나,
더러운 오수를 강에 그냥 흘려보내는 것을 매양 염려하고 있는 바,
그것은 내 짐짓 모른 척 부작의 인용할 수는 있겠다.

그리 패악질을 일삼던 인간들이,
이번엔 단 하나도 나타나지 않고,
모두 집구석에 숨어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다.

우리야 과원이니 오수관이 필요 없다.
하지만, 저들은 생활하는 집이니 오수관이 반드시 필요한 처지다.
제대로 하자면 모두들 내게 토지 이용 승낙을 구하여야 할 판인데,
죽은 듯 엎드려 있다.

게다가 놀부 열둘을 가마니 솥에 넣고 삶아 먹고도 아닌 척 시침 떼고도 남을,
저 욕심 사납던 할머니는 지선 도로에 맨홀 심는 것을 용인하였다.

(짠지의 추억
언젠가 할머니가 나를 찾아왔다.
지금 짠지가 아주 맛있게 익었단다. 그것 나눠주겠단다.
그러더니만, 손자 인터넷이 아니 된다고 하니 나 보고 고쳐달라고 한다.
내가 그 집에 들르니, 손자 녀석은 웃통을 벗고 나를 맞는다.
녀석 책상에 앉아 조사를 해보니 단지 인터넷망이 문제일 뿐이라,
kt에 전화하면 다 해결될 것이라 이르고 나왔다.
그리고 준다던 짠지는 없던 일이 되었다.
그에겐 우리 땅을 무료로 부쳐먹고 있던 처지는 고려할 일이 아니다.
그리 악착같이 제것을 아끼던 위인이,
제집 일이 되니 땅을 내준 것이다.)

그래 다음 주부터는 공사가 진행될 것이다.

인심이란 이리도, 
제 이익을 위하여는 물, 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며,
제 부끄러움을 열 길 물속에 감출 수도 있는 것이다.

鱣似蛇,蠶似蠋。人見蛇則驚駭,見蠋則毛起。漁者持鱣,婦人拾蠶,利之所在,皆為賁、諸。
(韓非子)

“장어는 뱀과 비슷하고, 누에는 벌레와 비슷하다.
사람이 뱀을 보면 놀라고, 벌레를 보면 머리털이 곤두서며 소름이 돋는다.
어부가 장어를 손으로 잡고,
아낙네가 누에를 주워 만진다.
이익이 있는 곳엔 모두 맹분(孟賁)이나 전저(專諸)가 되고 만다.”
(※ 맹분, 전저 : 춘추전국 시대의 장사(壯士))

賞在火也。
賞在水也。
賞在兵也。

상은 불 속에 있는 것이며,
상은 물속에 있음이며,
상은 병 속에 있는 게라.

어리석은 인간은 제 욕심에 치여,
목숨까지 가벼이 여겨 물, 불 속으로 뛰어든다.
제 형편이 이러함인데,
부나방을 어찌 비웃을 수 있으랴?

나를 그냥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
서울 살 때보다 더 많은 사건이 시도 때도 없이 거르지 않고 터진다.
근래에, 얼치기 공무원 때문에 서류 처리가 4개월 반이나 걸렸다.
자고 일어나니 농장 입구를 장식한 돌을 트럭 대놓고 빼가는 녀석이 나타났다.
울 넘어 부부가 개복숭아 털어가기도 하며,
고소 작업차 타고 들어와 농장 안에 심어진 나무를 무단히 자르는 일도 있었다.
여긴 적나라(赤裸裸) 벌거벗은 적육단(赤肉團)들이 출몰하는 욕망의 정글이다.

오죽하였으면 내가 일 년 내내 농장 입구를 쇠사슬을 치고,
저들의 접근을 차단하고 살겠음인가?

비료, 농약 일절 투입하지 않고 내 농철학대로 농사를 짓고 있다.
이제껏 농장 안에 시멘트 한 줌 들이지 않고, 하우스 외 비닐 한 조각 들이지 않고,
한 점 한 톨이라도 흙을 오염시키지 않으려 정갈하게 지켜내고 있다.
여기 지역 통틀어, 아니 전국을 통해,
나처럼 깨끗하게 농토를 유지하고,
반듯하게 농사를 짓는 사람이 과연 하나라도 있겠음인가?

행여라도 외부인이 나를 부축하며 돕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나를 건드리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라.
제발.

아침에 농장 안으로 남녀 둘이 들어섰다.
누구신가 물으니 품관원에서 나왔단다.
직불금 관련 현황 조사 나왔다고 한다.
성가셔 직불금 받지 않고 있다고 하니,
그래도 조사하여야 한다고 한다.

농민들 그냥 괴롭히고, 농사에만 전념하게 내버려 둘 일이다.
공무원 행정 처리를 위해 농사가 존재하는가?
아니면 농사를 부축하고, 돕기 위해 농정이 존재하는가?
알량한 보조금이니, 직불금 다 필요 없다.
그냥 내 농철학을 여기에서 구현하고 있는 나를 간섭하지 말고 내버려둬라.

나 그냥 농사만 지으며 살고 싶다.
내 농철학을 여기서 구현하며 수행하듯 살고 싶은 것이다.
제발 나를 건드리지 말고 그냥 홀로 살게 내버려 두길 바란다.

楚狂接輿歌而過孔子曰:「鳳兮!鳳兮!何德之衰?往者不可諫,來者猶可追。已而,已而!今之從政者殆而!」孔子下,欲與之言。趨而辟之,不得與之言。
(微子)

“초나라 광인 접여가 노래를 부르며 공자 곁을 지나자, 이르길,

‘새야 새야 봉황새야,
쇠락한 성덕을 어이할꼬?
가는 이를 따지지 말고,
오는 님을 기다릴까?
그만두고, 물러가라.
정치란 위태롭다.’

공자가 수레에서 내려, 말을 나누고자 하였으나,
피하여 도망치니 말을 함께 하지 못하였다.”

대저 봉황이란 성덕이 베풀어질 때라야 나타나고,
그렇지 않으면 숨어 있는 법이다.
그런데, 이런 난세에 나타났으니,
예전의 덕은 도대체 어디에 있더란 말인가?

공자를 봉황에 빗대며,
조롱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충고를 하고 있음인지?

지난 것은 책하지 않겠고,
앞으로 올 미래도 조심할 뿐이라,
지금도 기회가 있으니,
섣부른 기대랑 접고,
그만두고 물러날 일이다.

정치는 몸을 위태롭게 하니,
언제고 화를 입고 말 것이다.

내 관리는 아니나,
지금 돌아가는 꼬락서니와 당시의 모습이 오버럽되지 않는가?
내가 접여처럼 세상을 등진 것은 아니로되,
다만 욕망의 덩어리들과 멀어져,
농사를 짓고자 함이라.
제발 나를 건들지 말 일이다.

나는 공자와 같은 봉(鳳)도 아니고, 접여와 같은 광인도 아니다.
다만 붕(鵬)새임이니 세상을 소요유할 뿐인 것을.
메추라기들은 감히 나를 건들지 말지라.

(출처 : 圖片來自網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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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 2023. 4. 14. 1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