苦海無邊
苦海無邊,欲火焚身
집주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단다.
그는 그동안 대출받은 것이 많아 이를 끄기도 바쁜데,
양키의 고금리 정책 탓에 거푸 여간 힘이 든 게 아니었다.
그 탓에 월세를 내지 못한 게 수개월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독촉 전화를 걱정해왔다.
그런데 평소와 다르게 안주인으로 전화가 온 것이다.
밀린 월세를 독촉하기 위해 전화한 것이 아니라,
바뀐 계좌번호를 새로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독촉 전화가 아니니, 그래 다소간 여유가 생겼던 것인가?
남자 주인의 안부를 물었더니,
보름 전에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때늦은 부음 소식을 듣고 가슴이 서늘해졌단다.
그러자, 이 글을 읽고는 저마다 말 한마디씩 부조를 한다.
헌데, 고인의 명복을 비는 이가 적지 않더라.
일면식도 없는 이에게 명복을 빌어주고 있다니,
참으로 착한 마음이라 일러야 하는가?
심통 사나운 나는 이런 정경을 앞에 두자,
은근히 심술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여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故輿人成輿則欲人之富貴,匠人成棺則欲人之夭死也,非輿人仁而匠人賊也,人不貴則輿不售,人不死則棺不買,情非憎人也,利在人之死也。
'고로 수레를 만드는 이가 수레를 만들면, 사람이 부귀해지길 바라고,
관 짜는 이가 관을 만들면, 사람이 요절하길 바란다.
이는 수레 만드는 이가 어질고, 관 짜는 이가 흉악한 적당이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이 귀해지지 않으면 수레가 팔리지 않고,
사람이 죽지 않으면 관이 팔리지 않는다.
사람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죽는데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돌아가셨는데,
이런 말씀을 떠올리고 있는 나는 과연 흉한인가?
흉사를 앞두고 환희심이 일어 북 치고 장구 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니 자기와 무관한 이가 돌아가셔도,
국화꽃 몇 송이 올리며 명복을 빈다.
善哉
착한 노릇이구나.
과연, 그러한가?
세금 뜯기지 않으니,
이참에 착한 이인 양 행세하는 것은 아니고?
그리 착한 녀석이었다면,
왜 진작에 월세 대납해주지 않았는가?
실질은 외면하고,
값싼 입질로 때우려 함이 아닌가?
그대 당신들의 가벼운 입을 잠시 쉬고 더 들어보라.
관 짜는 일을 업으로 삼는 이가,
사람들이 죽기를 바란다는 저 말씀을 두고,
마냥 허물이 있다 나무라는 게 능사랴?
그래도 이게 정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관 짜는 일에 종사하지 말고,
수레 만드는 일에 종사할 일이다.
맹모삼천지교도 기실 따지고 보면,
수레 만드는 길을 내려는 맹모의 기획이라 하겠다.
내 자식은 수레 만드는 일로 나아갈 수 있겠지만,
누군가는 관짝을 짜고 있으리다.
삼천지교는 나 혼자 구렁텅이를 빠져나가는 공능이 있을지언정,
항구하니 온 세상 모두를 구하는 득책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말이다.
사람 일이란 게, 어찌 제 뜻대로 되랴?
원치 않았으되,
아찔꽝 들어 소 정수리를 내려쳐 뽀개는 도살업에 종사할 수도 있고,
칼 들고 관 짜는 일로 흘러들 수도 있으며,
월세 내지 않는 집 주인이 되고 싶지만,
어쩌다 보니 월세를 수개월 밀리는 처지에 놓일 수도 있는 법.
만약 이런 처지라면,
주인의 사정이 이제와 다르게 바뀌어,
조금 숨을 돌릴 수 있게 된다면,
그대 당신들은,
과연 관 짜는 이의 마음 경로를 따르게 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아아,
匠人成棺則欲人之夭死也며,
人不死則棺不買,情非憎人也,利在人之死也임이라,
관 짜는 이가 관을 만들면, 사람이 요절하길 바라게 되며,
사람이 죽지 않으면 관이 팔리지 않는다.
이는 사람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죽는데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함이니,
도살업자를 마냥 미워하거나,
관 짜는 일을 하는 이를 비웃는 게,
과연 옳다 할 수 있으랴?
제 입의 즐거움을 위해 도살업자를 필요로 하고,
죽고 나서는 관짝 짜는 이의 도움을 받아,
마른 장작처럼 굳은 그대 당신의 몸뚱아리를 눕힐 집을 구처하지 않더냐?
아아,
사람의 情과 利는 제 위치에 따라 궤를 달리하여 굴러가기도 하는 법.
이 희비의 쌍곡선 사이를 오가는 인간의 숙명이란 얼마나 지랄 같도록 슬픈가?
이 질곡에 놓인 인간 존재의 숙명을 깨닫게 되면,
종국엔 인간 아니 그를 넘어 중생, 나아가 존재 일반에까지 사랑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대승불교의 대자대비도 무슨 커다란 진리의 깨우침에 터한 발로가 아니라,
그저 이 존재가 처한 슬픈 숙명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터한 것이리라.
處處皆獄이라,
중생이 사는 곳은 처처가 지옥이다.
苦海無邊,欲火焚身이라,
오죽하였으면 이승을 고해苦海라 이를까?
내가 공부한 바로는,
한비자가 바로 이런 사실을 사무치게 깨우친 이라 생각한다.
그야말로 휴머니스트의 전형이라 여기고 있다.
법가 특히 한비자에 대한 항간의 오해는,
공부가 미치지 못하였기에 일어났을 뿐이다.
I love Hánfēiz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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