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주의
(※ 출처 : chosun)
궁색한 발상으로 시작하였겠지만,
나는 이런 국가주의(Statism) 발동을 위험한 시도라 여긴다.
양羊인 양 다가서는 사내 녀석에게 손목 내주면,
나중엔 급기야, 승냥이로 변해,
옷고름 풀어 재끼고, 속고쟁이 벗기어,
제 욕심을 채우려 들고 말 것이다.
그러함이니, 조선시대 계집사람은,
다리속곳, 속속곳, 단속곳, 고쟁이, 너른바지, 대슘치마 순으로 속옷을 겹겹이 입었음이다.
그리고도 모자라 은장도 품고 살았음이다.
자고로 지킬 것이 있는 자라야 지킨다 하였음이다.
요즘 계집사람들은 지킬 것이 없어,
그리 헤벌리고, 까 재끼는 것도 모자라,
알몸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는 것일까?
싸게들 노는 것임을 모르고 있으니,
참으로 천박한 노릇이라 하겠음이다.
왜 나는 병원의 출생통보제를 위험하게 보고 있는가?
국가가 인민들을 단속하고 나서는 일이 많아지고,
이를 옳은 일인 양 받아들인다면,
나중엔 마빡 내밀며 거기 666 인증 표식 인두로 지져 새기는 일도,
옳다며 박수를 칠 것인가?
주민등록증도 생각하기엔 이게 인민들을 옥죄는 재갈, 고삐와 무엇이 다른가?
주민등록이나 호패(號牌)나,
국가가 인민을 통제하기 위한 강력한 강압 장치이다.
이로써 과세의 기초가 정비되고, 병역을 효과적으로 부과할 수 있게 된다.
인민을 위한다는 명분을 앞세우지만,
신분은 저들의 통제하에 들어가고,
손발이 묶이며 부름에 저항할 수 없게 된다.
전차엔 저리 인민들을 눈물겹도록 아끼는 양 다가서지만,
후차엔 급기야, 밤도둑처럼 월장하여,
전자 칩 피부 아래 박고, 지문 등록하라고 나설 때,
그대 당신들은 옳타구나 손뼉 치며 따를 것인가?
전자 칩 피부 아래 박고, 지문 등록하라고 나설 때,
그대 당신들은 옳타구나 손뼉 치며 따를 것인가?
하나를 내주면 둘을 달라하고,
둘을 내주면 급기야 광주리에 있는 모든 떡 다 내놓으라 하는 게 호랑인 게라.
어렸을 때 호랑이와 할머니 이야기 듣지 않았느냐?
국가와 인민은 이리도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다른 것이다.
국가는 인민들을 숫자로 보기에,
무작정 숫자를 늘리려 하는 것이다.
인민들이 왜 아이를 낳지 않는가?
그들은 숫자가 아니라,
제 삶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고용(소득)과 주거 위험에 노출된 인민들은,
지금 상황하에서 이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게라,
국가가 인민들의 걱정을 덜어주길 원한다면,
근본적인 이들 위험을 제거해주어야 할 터이지만,
얼치기 국회의원은 사본축말捨本逐末이라,
본을 버리고 말단을 좇고 있는 것이다.
인민들 아기들마다 태어나자마자 목에 인식표 달아 숫자를 세겠다는 것이니,
이게 강아지에게 인식 칩 박아 넣겠다는 수작질과 무엇이 다른가?
인민들이 그리 미덥지 못한 존재이며,
위정자가 감시하여야 할 객체에 불과하단 말인가?
강아지를 귀하게 여기기에 인식 칩 넣는 것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견 양산 문제가 일어나니 이를 국가 관리 체계 안으로 넣겠다는 것임이다.
마찬가지로 소득, 주거 불안 문제를 해결할 대책을 내놓아야지,
기껏 말단을 깔짝거리는 것으로 생색을 내서야,
어찌 의원 체면을 챙길 수 있으랴?
수도 송수 본관인 닥타일 주철관(ductile iron pipe)이 깨져 물이 펑펑 새고 있음인데,
수도꼭지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물방울 새지 않게 밤새도록 세고 있겠다는 발상이라 하겠다.
이것 보고 잘했다고 글 옮겨오는 칠득이나,
박수쳐대는 팔득이들이 많으니,
천하가 이리 어지러운 것이다.
이리 손목 내주고, 고쟁이 벗어주다간,
나중엔 그대 당신들 대구리 안에 전자 칩 넣겠다고 대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음이다.
때문에 출생통보와 같은 정책은,
근인은 내버려두고, 그저 말단에 치우친 것이며,
이게 나중엔 큰 화를 불러오는 단초가 될 위험이 있는 것임이라,
민주자유시민이라면 처음부터 경계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허튼짓은 아예 싹부터 잘라버려야,
백 년 후 근심을 덜 수 있다.
여기 고사를 들어보라.
예로부터 은일(隱逸) 처사(處士)는 몸을 숨겨 세상으로부터 등을 진다.
이들은 가끔 빠끔히 고개를 들이밀고는 세상을 조롱하고는 사라지고는 한다.
세상을 버렸으면, 홀로 살아가면 그뿐일 터인데,
저들은 왜 동자 거웃 털처럼 삐죽 고개를 빼들어 세상을 기웃거리며 참견을 하는 것인가?
TV에 등장하는 자연인을 보고 있으면,
저들을 두고 은자라 일러야 하는가 하는 의심이 들곤 한다.
헌데 이들은 일반인들은 평생 한 번도 출연하지 못할 TV 매체를 빌어,
온 천하에 자신의 시시콜콜한 온갖 생활의 모습까지 공개를 하고 있는 것인가?
저들은 은자임을 내세워 실인즉,
은폐된 세속적인 욕망, 꿈을 전파로 실어 나르며, 이를 투사(投射)하고 있다.
과연 그들은 뜻 세운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있는 것일까?
좌절된 욕망, 미실현 꿈을 상기도 아파하고 있음이 아니더냐?
아, 가련쿠나.
그럴 양이면 호리병 옆구리에 차고 서라벌 저잣거리를 내달리며,
종일 술에 취하고, 요석공주를 후리던 원효야말로 진짜배기 은자가 아니랴?
小隱隱陵藪,大隱隱朝市 (小隱隱於山野,大隱則隱於都市)
소은은 산야에 숨고, 대은은 저잣거리에 숨는다.
내가 보기엔 저들은 소은도 못되고,
그저 자연인이라 불러줄 수 있을 뿐이다.
기실 요즘은 농부들은 유기농도 모자라 자연농이라 자칭하며,
우쭐거리고들 있지 않은가?
(참고로 나는 내 농철학에 기초하여,
무농약, 무비료, 무제초제, 무관수 농사를 영위하고 있다.
흙은 마냥 청정하여 퍼질러 앉아 퍼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다.
명과 실이 함께 하고,
철학과 농법이 함께 하고 있다.)
오늘날 자연이란 말은 實이 아니라 名을 사는 짓에 동원될 뿐,
그 본의가 실종되어 아리송해진지 사뭇 오래 전이다.
저 홀로 저리 산속에 들어 자족하고 있다면,
그를 그 누가 있어 나서서 탓할 수 있으랴?
허나, 만약에 이 세상 모든 이들이 저런 식으로 살아간다면,
세상의 꼬락서니는 어떻게 될까?
그러할 때 나는 이런 회의를 일으켜보게 되는 것이다.
과연 이들은 세상에 도움이 되는 존재인가?
아니면 해를 끼치는 자들인가?
아니, 이를 이해로 나눠 갈래지으며,
판단하고 시비를 일으키는 것 자체가 과연 옳은 것인가? 아닌가?
여기 두 가지 사례를 모아 제시하는 바,
각자는 각기 제 생각을 정리해보길 기대해본다.
태공망이 제나라 동편 땅을 봉후(封侯) 받았다.
제나라 동해상에 거사 하나가 있어 광율, 화사란 자가 있었다.
이 형제 두 사람이 의론을 세워 말하다.
우리는 천자의 신하가 되지 않고, 제후를 벗 삼지 않는다.
밭 갈아 먹고, 우물 파서 먹으니, 우리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구하는 바가 없다.
위로부터 주어지는 명예가 없고, 군주로부터 녹도 받지 않는다.
벼슬 살지 않고, 그저 농사에 힘 쓸 뿐이다.
태공망이 영구 땅에 이르러, 관리를 시켜 잡아 죽여 그 처음 벌로 삼았다.
주공단이 노(魯)로부터 그것을 듣고는 급히 파발을 띄워 묻는다.
저 두 사람은 현자다.
오늘 나라를 받고서는 현자를 죽이니, 그 무슨 까닭이냐?
태공망이 답하여 이르다.
이 형제 두 사람이 의론을 세워 말하길,
우리는 천자의 신하가 되지 않고, 제후를 벗 삼지 않는다.
밭 갈아 먹고, 우물 파서 먹을 뿐이다.
우리들은 남에게 구할 바가 없다.
위로부터 주어지는 명예가 없고, 군주로부터 녹도 받지 않는다.
벼슬 살지 않고, 그저 농사에 힘 쓸 뿐이다.
저들이 천자의 신하가 되지 않겠다함은, 곧 제가 신하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요.
제후를 벗 삼지 않겠다 함은, 곧 제가 부릴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밭 갈아 먹고, 우물 파서 먹으며, 남에게 구할 바가 없다는 것은,
제가 상벌로써 권하거나 금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위로부터 주어지는 명예가 없다함은,
비록 지식이 있다한들 제게 소용이 되지 않으며,
군주로부터 녹을 구하지 않는다 하니,
비록 현명하다한들 제게 공이 되지 않습니다.
벼슬 하지 않으니 다스릴 수 없고, 맡은 일이 없으니 충성할 수 없습니다.
또한 선왕이 신하와 백성을 부릴 수 있는 바는 작위와 봉록이 아니면 형과 벌이었습니다.
지금 이 네 가지로써 그들을 부릴 수 없다면,
제가 누구에게 군주가 되겠습니까?
병역에 복무하지 않고서도 현달하고,
밭을 갈지도 않고서도 이름을 드러낸다면,
이는 나라(사람)를 가르치는 방도가 아닙니다.
이제 말이 여기에 있어, 그 상태가 천리마의 모습이라면, 천하의 양마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몰아도 나아가지 않고, 당겨도 하여도 멈추지 않으며.
왼쪽으로 가려 하여도 왼쪽으로 가지 않고,
오른쪽으로 가려 하여도 오른쪽으로 가지 않는다면,
비록 천한 종이라도 그 발을 의탁하려 하지 않습니다.
종이 그 발을 말에 의탁하려는 까닭은,
그로써 이를 얻고 해를 피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만일 사람에게 소용이 닿지 않는다면,
비록 천한 종이라도 그 발을 맡기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가 세상에서 현명한 이라 여겨진다고 스스로 말한다할지라도,
군주에게 소용이 되지 않고,
행동이 지극히 현명하더라도,
군주에게 소용이 닿지 않는다면,
밝은 군주의 신하가 되지 못하며,
역시 저 양마를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간에 가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고로 죽여 버린 것입니다.
太公望東封於齊,齊東海上有居士曰狂矞、華士,昆弟二人者立議曰:「吾不臣天子,不友諸侯,耕作而食之,掘井而飲之,吾無求於人也。無上之名,無君之祿,不事仕而事力。」太公望至於營丘,使吏執殺之以為首誅。周公旦從魯聞之,發急傳而問之曰:「夫二子,賢者也。今日饗國而殺賢者,何也?」太公望曰:「是昆弟二人立議曰:『吾不臣天子,不友諸侯,耕作而食之,掘井而飲之,吾無求於人也,無上之名,無君之祿,不事仕而事力。』彼不臣天子者,是望不得而臣也。不友諸侯者,是望不得而使也。耕作而食之,掘井而飲之,無求於人者,是望不得以賞罰勸禁也。且無上名,雖知、不為望用;不仰君祿,雖賢、不為望功。不仕則不治,不任則不忠。且先王之所以使其臣民者,非爵祿則刑罰也。今四者不足以使之,則望當誰為君乎?不服兵革而顯,不親耕耨而名,又所以教於國也。今有馬於此,如驥之狀者,天下之至良也。然而驅之不前,卻之不止,左之不左,右之不右,則臧獲雖賤,不託其足。臧獲之所願託其足於驥者,以驥之可以追利辟害也。今不為人用,臧獲雖賤,不託其足焉。已自謂以為世之賢士,而不為主用,行極賢而不用於君,此非明主之所臣也,亦驥之不可左右矣,是以誅之。」
일설에 따르면, 태공망이 동쪽의 제나라를 봉후 받았다.
바닷가에 현자 광율이 있었다.
태공망이 이를 듣고는 가서 청하였다.
세 번에 문 앞에 말을 내렸나,
광율은 맞아 주질 않았다.
태공망이 그를 죽여 버렸다.
마침 이 때를 당하여, 주공단이 노에 있었으니 그를 말리려 달려갔다.
그러나 그곳에 다다랐으나 이미 주살되고 난 후였다.
주공단이 말한다.
광율은 천하의 현자인데 어째서 선생은 그를 죽여버렸는가?
태공망이 답하다.
광율은 의론을 펴길 천자의 신하가 되지 않고,
제후의 벗이 되지 않는다 합니다.
저는 그가 법을 어지럽히고, 가르침을 거스를까봐 첫 벌로써 죽여 버린 것입니다.
이제 여기 말이 있는데 형용이 마치 천리마와 닮았으나,
달려 나가지 않고, 잡아 끌어도 멈추지 않는다면,
비록 종일지라도 그 발을 의탁하여 그 수레를 돌리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一曰。太公望東封於齊,海上有賢者狂矞,太公望聞之往請焉,三卻馬於門而狂矞不報見也,太公望誅之。當是時也,周公旦在魯,馳往止之,比至,已誅之矣。周公旦曰:「狂矞,天下賢者也,夫子何為誅之?」太公望曰:「狂矞也議不臣天子,不友諸侯,吾恐其亂法易教也,故以為首誅。今有馬於此,形容似驥也,然驅之不往,引之不前,雖臧獲不託足以旋其軫也。」
제환공 때, 소신직이라는 처사가 있었다.
환공이 세 번 찾아 갔으나, 만나 볼 수 없었다.
환공이 말하다.
내가 듣기론 포의지사(벼슬 하지 않는 자)가 벼슬과 녹봉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면,
만승의 군주를 쉽게 대하지 못하였을 테며,
만승의 군주가 인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역시나 포의지사를 아래로 얕볼 리가 없다.
그리고 다섯 번 찾아가서야 만나 볼 수 있었다.
齊桓公時,有處士曰小臣稷,桓公三往而弗得見。桓公曰:「吾聞布衣之士,不輕爵祿,無以易萬乘之主;萬乘之主,不好仁義,亦無以下布衣之士。」於是五往乃得見之。
어떤 이가 말한다.
환공은 인의를 아지 못한다.
무릇 인의는 천하의 해를 근심하고,
한 나라의 환란에 달려가 굴욕을 피하려 하지 않는 것을 일러 인의라 한다.
고로 이윤은 중국이 어지럽다고 여겨, 탕(임금)의 요리 담당이 되고자 하였으며,
백리해는 진이 어지럽다고 여겨, 목공의 포로가 되고자 하였다.
모두 천하의 해를 근심하고,
한 나라의 환란에 달려가, 굴욕을 불사하려 하였음이니,
이를 일러 인의라 한다.
지금 환공이 만승의 위세를 가지고 필부의 아래 몸을 굽혀,
제 나라를 걱정하려 한다.
그러나 소신(小臣)이 보려 하지 않는다.
소신(小臣)이 백성임을 망각하고 있다.
이리 백성의 하나임을 망각하다면 이를 인의라 할 수 없다.
인의란 남의 신하된 예를 잃지 않고,
군신 간의 위치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런 고로 사방의 봉지 내에서 회를 이끌고 조정에 참예하는 자를 일러 신하라 한다.
신하 가운데 직분을 나눠 일을 맡은 자를 일러 맹(萌, 백성)이라 한다.
지금 소신(小臣)은 민(民)이나 맹(萌)의 무리 가운데 있으면서,
군주의 바라는 바를 거역하고 있으니,
이를 인의라 할 수 없다.
인의가 부재한데,
환공은 쫓아 예를 차렸다.
소신(小臣)이 지혜와 능력을 갖고서도,
환공을 피해 달아났다면,
이는 숨은 것이니 마땅히 형을 받아야 한다.
만약 지혜나 능력도 없으면서,
거짓으로 교만을 떨었다면,
이는 환공을 속인 것이니 마땅히 죽음을 받아야 한다.
소신(小臣)의 행동은 형이 아니면 죽임을 당해야 한다.
환공이 군신의 도리를 다스리지 못하고,
형벌을 받아야 할 이를 예로 대하였다.
이는 환공이 위를 가벼이 대하여 군주를 모독하는 풍습을 제나라에 가르친 셈이다.
다스리는 방법이 아니다.
고로 환공은 인의를 모른다 하는 것이다.
或曰:桓公不知仁義。夫仁義者,憂天下之害,趨一國之患,不避卑辱謂之仁義。故伊尹以中國為亂,道為宰于湯;百里奚以秦為亂,道為虜于穆公;皆憂天下之害,趨一國之患,不辭卑辱,故謂之仁義。今桓公以萬乘之勢,下匹夫之士,將欲憂齊國,而小臣不行,見小臣之忘民也,忘民不可謂仁義。仁義者,不失人臣之禮,不敗君臣之位者也。是故四封之內,執會而朝名曰臣,臣吏分職受事名曰萌。今小臣在民萌之眾,而逆君上之欲,故不可謂仁義。仁義不在焉,桓公又從而禮之。使小臣有智能而遁桓公,是隱也,宜刑;若無智能而虛驕矜桓公,是誣也,宜戮;小臣之行,非刑則戮。桓公不能領臣主之理,而禮刑戮之人,是桓公以輕上侮君之俗教於齊國也,非所以為治也。故曰:桓公不知仁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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