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시의 화신 전유성의 새로운 탈주
어떤 이 하나 있어,
전유성의 타계를 두고,
한국이 유머가 사라진 삭막한 곳이 돼버린 이유를 독서와 사색을 멀리하는 야만적인 암흑사회가 된 데 있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유머의 효능을 모르기에 정치권이 싸움박질에 여념이 없다고 하더라.
난 이 마당에 '유머의 효능'을 말하고 있는 저 천박함에 짜증이 났아.
조들 속물들이란 도대체가.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란 말은 어려서부터 듣고 자라지 않아?
기실 당시는 죽간이라 다섯 수레라 할지라도 생각만큼 많은 게 아니야.
물론 한자란 게 뜻이 실려 있어 그 실질 근량은 결코 가벼운 게 아니지만.
기실 이 말의 원래 출처는 장자지.
이것 흔히 남아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 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의미로 새기지만,
장자엔 외려 혜시의 사상이 방대하여 지은 책이 다섯 수레라 이르고 있어.
하지만 장자는 그를 두고 잡박(雜駁)하여 사물의 핵심을 제대로 짚지 못했다(不中) 하였어.
그리고 그의 사상의 편린이 죽 소개되고 있어.
장자와 혜시는 라이벌이자, 철학적 토론의 친구라 할 수 있지.
언제나 장자가 혜시를 까내리고 있지만,
그가 죽자 더 이상 말다툼할 상대가 없어졌다며 깊은 고독감에 빠졌지.
혜시는 공손룡과 함께 명가의 핵심 인물이지.
유가는 정치, 윤리를 주로 다루며 정명론(正名論)을 펴지만,
명가는 명(名)과 실(實)의 관계에 집중하였어.
이것 따지고 보면 개그의 세계와 가깝지.
전유성은 실이 아니라 명 즉 언어, 논리의 세계를 깊이 천착하였다 하겠어.
그가 컴퓨터 책을 쓴 것도 이런 그의 성향을 안다면 일응 수긍할 수 있을 게야.
물론 명학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가 되어 있다고 보여지지는 않지만,
그의 태도는 여느 사람들과는 확연이 차이가 있었지.
혜시는 현실이 아니라 언어, 논리의 본질에 집중하다 보니,
유가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았지만,
제대로 그의 사상을 알면 그리 매도할 수 없지.
실제 그는 재상 출신이거든.
그는 결코 공리공담만 펴며 현실을 떠난 자가 아니었어.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버렸지.
大同而與小同異,此之謂小同異;萬物畢同畢異,此之謂大同異
그의 핵심 사상 중의 하나인데,
이것 역하면 다음과 같아.
'크게 같은 점이 있는 것과 작게 같은 점이 있는 것이 다르다면,
이것을 소동이(小同異)라 이른다.
그러나 만물은 모두 같은 점이 있기도 하고 모두 다른 점이 있기도 하니,
이것을 대동이(大同異)라 부른다.'

이것 대단히 철학적이며 논리적인 생각이지.
결국 이 대동이는 氾愛萬物,天地一體에 이르니,
곧 '널리 만물을 사랑하니, 하늘과 땅은 본래 한 몸이다'
이런 결론에 도착하지.
데리다나 들뢰즈의 차이와는 그 궤가 다르지.
난 서양철학 공부가 깊지 못하니 이 양자의 차이에 대한 이해를 여기 굳이 늘어놓지는 않겠어.
재미있는 탐구가 될 터이지만.
난 전유성도 이 혜시의 차이 철학의 본질을 꿰뚫은 경지에 도달하였다고 보지.
그런즉 기실 그는 만물, 만민을 사랑하여 그리 사람들의 웃고 울린 게 아니겠어?
그는 실재가 아니라 유명론에 기초하여,
세상 사람들의 허위의식, 가식을 까내려 패대기를 치고 말지.
그게 독특한 그의 氾愛萬物의 형식이지.
하지만 그는 이제 이런 자신조차 지구 밖으로 탈주시킴으로써 우주와 대동이(大同異)를 꿈꾸고 있어.
인도 논리학 즉 니아야(Nyāya)학파의 인명학은 제(諸) 학파의 실용적인 토대가 되었지만,
중국의 명가는 순수 논리적 호기심으로 치부되며,
현실주의적인 중국에서 결국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어.
전유성은 실용을 추구하는 현실세계가 아니라 개그계를 노닐었은즉,
논증의 효용이 아니라, 그저 언어, 개념의 놀라움을 노래하는 것으로 족하였지.
그러니 혹자가 지적한 어처구니없는 유머의 효능 추구없이,
(도대체 유머와 독서에서 무슨 효능을 찾고 자빠졌는가?
이 짐승 기계, 뱃구레에 무엇인가를 채워넣지 않으면 짐승은 갈급한 욕망으로 늘 불안할 수밖에.)
붕새가 되어 구만리 장천을 마음껏 날았으니,
실로 자유로운 영혼, 대자유인이라 하겠어.
지구밖으로 탈주하여 새로운 우주 유영(游泳)을 시작한 그의 장도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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