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 Ratio와 긴고아(緊箍兒)
공학에 S/N 비(比)란 게 있어.
( Signal-to-Noise Ratio
S : Signal, N : Noise )
신호(Signal)란 정보의 표상이라 할 수 있어.
이것 한자로는 信號로 쓰는데,
기실 이 자의만 제대로 짚어도 그 본뜻을 깊이 헤아릴 수 있지.
단순한 '징후'나 '사인'이 아니라,
사전에 약속된 규칙이나 암호를 통해,
외적 매개체를 통해 진실된 의미를 전달하는 행위를 의미해.
오늘날 공학에선 이 진실을 표달, 전달하기 위해,
일정한 약속에 따라 코드를 만들어 전하고,
수신측에선 다시 디코드하여 전달된 의미를 수용하게 되지.
따라서 여기엔 신뢰가 기반이 되지.
그래 信號라 하는 것이야.
약속(信) 그리고 그에 기초한 전달(號)인 게야.
그럼 잡음(noise)이란 뭣인가?
논어에 보면 道聽而塗說,德之棄也이란 말이 있어.
말 그대로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는 것은, 덕이 버린 바이다란 뜻이야.
가령 오늘날 sns에 떠도는 말을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곧장 다른 곳에 가서 퍼뜨리는 fake news를 떠올려 봐.
여긴 신뢰 기반이 없어.
앞서 신호에서의 信이 없지. 그래 雜인 게야.
그리고 신호에서의 號에 대비하여 音인 게야.
이는 약속된, 코딩된 의미가 실린 부르짖음이 아니라,
그저 의미없는 또는 정보를 방해하는 소리(音)인 게야.
이총목명(耳聰目明)이라,
본디 귀는 총명하고, 눈은 밝아야 해.
그렇지만 귀가 뚫렸다 하여 모두 바른 말을 듣는 게 아니고,
눈을 뜨고 있다 하여 모두 옳게 보는 것은 아니지.
대개는 충이불문 (充耳不聞)이라 청맹과니 당달 봉사일 뿐이야.
오직하였으면,
重瞳四乳,耳聰目明
普為仁表,聖作元輔 이런 말이 있겠어.
여기 눈동자가 넷, 젖꼭지가 넷이란 말은 성인을 가리켜.
순임금이 중동이었다든가, 주문왕이 젖꼭지가 넷이란 설이 있듯.
그냥 눈이 둘, 귀가 둘이면,
耳聰目明할 수 없으리니,
이것 얼마나 슬픈 현실이야.
따지고 보면, 重瞳四乳 이것이야말로 병신이 아니야.
그런데 정상이라는 자들이 耳聰目明하지 못하니,
重瞳四乳라는 이들이 성인 노릇을 할 수밖에.
(※ 참고 글 : ☞ 중동(重瞳) )
각설(却說) 이야기를 다시 잇자.
노이즈(잡음) 대비 신호의 크기가 클수록,
정보의 신뢰성이 커지고, 전달 속도, 용량도 커서, 시스템의 효율성이 높아지지.
최근 국감에 나타난 명태균을 보자 난 S/N Ratio를 떠올렸어.
그에게선 노이즈가 너무 커서 신호 추출이 어려워져 보이더란 말이지.
한데 신호와 잡음을 상호 대립하는 것으로 여기면,
그의 발화 데이타 덩어리에서 도대체가 신호를 포착하는 게 여간 어렵지 않은 과업이 될 것이야.
신데렐라의 새엄마는 그가 무도회에 가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위해,
콩을 잿더미 속에 뿌려놓고 그것을 한 시간 안에 모두 골라내라고 억지를 부렸지.
그는 새의 도움을 받아 콩을 골라내는데 성공하지.
이 사건에선 힘이 들어서 그렇지,
어쨌건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면 콩과 재를 분리해낼 수 있어.
명백히 신호와 노이즈는 구별이 가능한 것이니까.
하지만 명태균이 발화한 것은 그 즉시 낱낱이 해체되어,
극미의 언설(言屑)로 되어 허공중으로 쏘아져 흩어져 버리고 말아.
이것은 신호와 잡음을 구별하는 것조차 거의 불가능하여,
아무리 정교하고 성능좋은 기기를 쓴다 하여도 도대체가 SNR을 개선시킬 수가 없어.
그렇지 않아?
S와 N그 자체를 특정할 수도 없는 마당이니,
측정, 계측할 수도 없게 되는 것이지.
나는 순간 불교 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의 극미(極微)를 떠올렸어.
명태균은 발화 즉시 물질의 최소 단위인 극미로 해체시켜 버리는 것이야.

無可分, 無方分임이라,
이 극미는 더는 나눌 수 없고, 방위도 갖지 않지.
그의 재주는 과시 손오공의 재주를 방불하고 있는 게야.
우리가 말야, 신호를 유의미한 특정 주파수 또는 밴드(band, 대역)라고 한다면,
소음(잡음)은 전 영역에 걸쳐 분포한 주파수 spread라 할 수 있어.
가령, 펄스 트레인(pulse train)을 두고 주파수 분석을 하면,
모든 주파수의 화(和)임을 알 수 있어.
구사론에선 물질의 최소단위를 두고 無可分, 無方分이라 하였지만,
퓨리에는 펄스를 모든 주파수의 spread로 보았고,
이것을 정확히 수학적으로 decompostion하여 입증해내었지.
실제 구사론(소승)의 극미는 대승의 유식학에 의해 심대한 도전을 받았지.
구사론의 물질관은 현대의 입자 물리학과 유사해.
하지만, 無可分, 無方分은 유식학에 의해 논리적으로 완파되고 말지.
기실 극미의 파괴(破極微)는 대승불교가 색즉시공(色即是空)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기초가 되지.
난, 그래, 명태균의 저 소음의 無可分, 無方分을 이 유식학의 방법론을 통해 완파할 수 있다고 생각해.
즉 그는 분리할 수 없다, 방위도 없다는 허위의 논리 장막 속으로 자신을 숨기나,
저 장막의 실체성을 철저하니 찢어버리고 그를 밝은 광장 밖으로 꺼내 내동댕이칠 수 있다고 봐.
성유식론(成唯識論)엔 이를 논파하는 장면이 실감나게 노래되고 있어.
又諸極微隨何處住。
若外無障應至十方。
若有障礙便應更相涉入。
則諸極微不成粗色。
由此極微定有方分。
'또한 모든 극미(極微)가 어느 곳에 처해 있다고 하자.
만약 밖에 장애가 없다면, 응당 시방(十方) 모든 곳에 두루 미쳐야 할 것이다.
만약 (서로) 장애가 있다면, 마땅히 서로 더불어 섞여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극미는 조색(粗色, 물질)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이로 인해 극미는 반드시 방위가 있다.'
復有方分便可分析。便非實有。
'또한 (극미에게) 방위가 있으면, 마땅히 분할(分割)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곧 실유(實有)가 아닐 것이다.'
이를 각기 1난(難), 2난이라고 부른다.
결론적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극미에 방위가 없으면, 물질 세계의 확장성과 장애성을 설명할 수 없다.
극미에 방위가 있으면, 그것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최소 단위'가 아니다.
따라서, '실재하는 외부의 극미'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이 논리적 파괴를 통해 유식학파는,
외경(外境)은 실재하지 않으며, 오직 식(識)만이 존재한다는,
만법유식(萬法唯識)의 근본 명제를 확고부동하게 내세울 수 있게 된다.
명태균 역시 허공중에 허위, 위장의 스프레이를 마구 뿌려대며,
無可分, 無方分의 세계를 창출하고 있어.
하지만, 이것은 실제 세계를 숨기는 장치가 될 수 없지.
즉 그는 오세훈, 김영선, 홍준표, 이준석 등과 거래한 것이로되,
이를 질료로 삼아 장막을 허공 중에 드리우며 그 뒤로 숨고 있어.
저들 역시 약점을 가졌은즉,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유사(遊絲)라, 즉 봄철 아지랑이처럼 흐느적 거리며,
현실 공간을 모호하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지.
유식학은 만법유식(萬法唯識)이라 하였어.
명태균은 재주가 뛰어날 수는 있지만,
대질경(帶質境)에 갇혀 있어.
본질을 왜곡하며 외부의 사물, 세계를 마구 그려내고 있어.
아주 고약한 노릇이지.

서유기를 보면 손오공은 재주가 뛰어나지.
그런데 그의 머리엔 긴고아(緊箍兒)가 씌워지며,
삼장법사 현장를 모시고 서역으로 수행길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되지.
손오공의 실패는 대뇨천궁(大鬧天宮)이라, 천궁에 들어가 난동을 피운 것이니,
이는 그가 재주를 믿고 교만하였기 때문이야.
제천대성(齊天大聖)이라 스스로 하늘과 맞먹는다고 기염을 토했어.
명태균 역시 부패한 정치권력과 함께,
민주헌정 질서를 어지럽히고 세상 사람을 한껏 농락하였고,
지금도 여전히 허물을 감추려 잔재주를 피우고 있는 게 아니랴?
한편, 그를 대하고 있는 일반 대중은 독영경(獨影境)에 빠져,
있지도 않은 허구를 창조해내며,
태균이가 처넣은 그물 속에서 파드득 거리고 있는 것은 아냐?

아아,
중생은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의타기성(依他起性)에 빠져,
집착을 벗어나지 못하고, 육도를 구르고 있다.
전식성지(轉識成智)이라,
식에 빠지지 말고 두 발 굴러 지혜의 길로 들어설 일이다.
천하를 호령하는 영웅, 사찰 대웅전 가운데 모셔진 대웅(大雄)이 될 일이다.
긴고아(緊箍兒)를 머리에 찬, 고작 잔재주는 부르는 손오공 말에 홀려,
해롱해롱 거려서야 어찌 장부 체면을 세울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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