食焉不辟其難 - 자로를 생각한다.
미디어워치 황의원 절명에 이어 변희재까지 구속되니,
한 장면이 떠오르네.
(※ 두 사람은 최순실 태블릿PC가 조작된 증거라는 의혹을 강하게 주장하며 JTBC와 검찰 등을 비판하는 활동을 미디어워치를 통해 주도적으로 펼쳤다. 이로 인해 2018년, 명예훼손 혐의로 변희재는 징역 2년, 황의원은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바 있다.
변희재는 도중 보석금을 내고 일시 풀려난 상태였으되,
02일 다시 구속되었다.
최근 첫딸을 얻었다 한다.
황의원은 얼마전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
난, 변희재에 대해 동조를 한다든가, 무시한다든가 하는 정리된 입장이 없다.
큰 관심이 없고, 잘 아는 바도 없기 때문이다.)
道不行,乘桴浮于海。從我者其由與?
'내 도가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작은 땟목을 타고 바다로 떠나버릴 것이다.
그때 나를 따라올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자로(子路)뿐일 것이다.'
공자가 주유천하하며 도를 펼 기회를 찾았지.
하지만 천하는 어지러웠고, 한 뼘의 땅을 더 차지하려고,
모든 나라들이 갈심진력하고 있었다.
그러니 예악을 앞세운 공자의 말이 씨알이나 먹히랴?
바로 이 때 공자는 더는 이 짓을 지속할 의욕을 잃었지.
그리고 저 뗏목 운운하며 이제 그만 두려는 것이야.
(과연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학당을 열지.
현실에서의 좌절 후, 후학이나 기르는 것 말고 더는 할 일이 남아 있지 않은게야.
오늘날 정상모리배들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이와는 반대로 외유를 떠나거나,
농사 짓는 코스프레를 하거나,
운전수 또는 야학당을 열지.
썩어자빠질 우라질 놈들.
목아지를 비틀어 다시는 나서지 못하게 해야 해.)
그러면서 나를 따를 자는 자로이겠지?
이리 탄식하는 장면이야.
자로는 그의 제자 중 가장 혈기 넘치는 무인 기질을 가진 이야.
하지만 공자는 由也好勇過我,無所取材 이리 탄식하고 말아.
즉 자로는 나보다 더 용감하지만, 재능은 미치지 못하다는 것이지.
나는 황의원을 자로에 빗대어 보며 감상에 젖어본다.
(※ 그는 변희재를 영웅이라 하였어.)
자로는 후에 위나라에서 벼슬을 했는데,
변란이 일어나자 주군을 지키려다 전사하고 말지.
그는 당시 孔悝의 가신이었는데, 出公 라인이었고,
맞서 싸우는 상대는 蒯聵로,
기실 蒯聵는 出公의 아버지야.
묘하게 얽혀 권력 다툼이 일어난 게야.
싸움의 결과 出公은 쫓겨가고, 蒯聵가 이겼으니, 곧 그가 莊公인 게야.
이를 마치 박근혜 그리고 이에 맞서는 반박 세력과 대비시켜보면,
이동(異同)간 재미있는 시삿점을 발견할 수 있어.
변희재는 孔悝, 황의원은 자로에 빗대면 아주 흥미롭지.
당시 시민들은 촛불 들고 언 땅에서 밤을 새웠어.
헌데 뒷늦게 숟가락 들고 달가가 뛰어들어,
촛불 정신을 훔쳐먹고는 하라는 개혁은커녕 외려 천고만고의 흉괴 윤석열을 까흘려내었지.
그저 당시 간배들의 배를 갈라내어 간을 씹어먹는다한들,
나의 분심을 잠재울 수는 없을 게야.
당시 공자는 이미 그의 죽음을 예견했어.
柴也其來,由也其死矣
즉 자고(子羔)는 위험을 피해 돌아올 것이나,
자로는 맞서 싸우다 죽을 것이라고 했어.
의기가 충만한 자로가 불의를 피하지는 않을 터이니까.
사기엔 이들 양자의 극렬하게 대비되는 장면이 그려져 있어.

仲由將入,遇子羔將出,曰 門已閉矣。子路曰 吾姑至矣。子羔曰 不及,莫踐其難。子路曰 食焉不辟其難。
중유(자로)가 (성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자고(子羔)가 (성 밖으로) 나오면서 이리 말했다.
"성문이 이미 닫혔소."
자로가 말하였다.
"나는 일단 가 봐야겠소."
자고가 말하였다.
"이미 미치지 못할 일이니, 그 위난(危難)에 발을 들이지 마시오."
자로가 말하였다.
"(그 곳에서) 봉록을 먹었으니 그 위난을 피하지 않겠소."
자로는 그 피가 흥건히 뿌려지는 그 구덩이 현장 속으로 달려가지.
하지만 황의원은 스스로 죽고 말아.
현실의 강고함에 절망한 것일까?
아니면 변희재의 정의라는 게 헛된 것임을 뒤늦게 알아챈 것일까?
난 깊게 추적하지 않았고, 정보획득에 제한이 있은즉 제대로 알 수 없다.
하지만, 만약 황의 절명이 현실의 강고한 벽에 대한 절망 때문이라면,
食焉不辟其難임이라,
봉록을 받았은즉 그 위난을 피하지 않고 함께 한다라는 자로의 정신과는 결이 사뭇 다르다 하겠다.
고대에 의리와 신의를 절대 가치로 여긴 것은 자로뿐이 아니야.
지백을 섬긴 예양의 의리도 자로 못지 않지.
하지만 오늘날 이런 인물들은 다 사라지고 말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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