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덕순아

생명 : 2008. 8. 9. 21:23


덕순아

손을 꼽아 헤아려보니 얼추 2개월여 동안의 만남이다.
등산길에 그들을 보았다.
대책 없이 산기슭 밭에 떨구어진 그들,
고양이 두 마리, 강아지 한 마리.

오늘에야 주인에게 확인한 바이지만,
암컷인 검은 고양이는 검어서 검비,
수컷인 노란 고양이는 노란색이라 노비라 불렀다고 한다.
노비라니 이것은 좀 아니다 싶다.
나는 금비라 고쳐 부르기로 한다.
금비(金琵)라, 황금빛 비파요,
검비인즉, 검은색 비파라.
야옹, 야옹.
저들이 살그머니 움직일 때마다 스르렁 낭랑(朗朗)하니 비파소리가 나진 않던가?

강아지는 덕순이라고 하니, 필경 암컷인 게다.
덕순(德順)이라니 순간 내 입가에 미소가 절로 배어난다.
나는 TV를 보지 않으니 잘 모르겠으나,
이게 혹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이 아닌가도 싶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덕스럽고 순한 모습이 그려지며,
그리 불러주는 주인 마음의 인정이 제법 느껴지는 것이다.

저들과 인연을 맺고부터,
오며 가며, 가끔씩 먹이를 주곤 하였으나,
최근에 그들이 밥도 충분히 먹지 못하고,
물도 편히 공급을 받지 못한 것을 알고는 매일 그들을 돌보아 왔다.

며칠 전에는 주인을 만나,
한참 부탁의 말들을 늘어놓았다.
그 후부터 없던 물그릇이 등장하고, 늘 물이 채워진 모습을 보게 되었다.
게다가, 아픈 금비 눈을 나 혼자 치료해준지 알았더니만,
그도 안약을 발라 주었다고 한다.
그날 내가 치료해줄 것을 부탁했는데,
그는 다행스럽게 나의 부탁을 모두 따랐다.
주인이 생각보다는 흉한 분은 아닌 게다.

새로 이사 온 그곳 이웃은 냄새난다고,
당국에 신고를 하겠다는 으름장을 놓았다.
이를 무마하느라, 목석처럼 무딘 내가 이리저리 타이르기까지 하다니,
저 가여운 녀석들의 아픔 앞에 가릴 것이 무엇인가?
더욱이 겨울을 나려면 새로 집까지 지어야 하니,
한참 참아내어야 한다.

저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오면,
늘 마음이 편치 않다.
소싯적 방학 숙제도 일기만 제외하고는
사나흘 만에 다 해쳐버리고 말아야 직성이 풀리는 내 성격인지라,
미제(未濟)의 문제가 눈앞에 어른거리니, 걱정거리가 하나 늘은 것이다.

그런데, 어제 그들을 만나러 간 자리,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묶어 두지 않는 고양이는 늘 길 변까지 마중을 나오곤 하였다.
그들도 보이지 않고,
묶어둔 강아지 집도 텅 비었다.
개줄만 덩그란히 홀로 던져져 있었다.

이리저리 찾아보며 불러보아도 아무런 기척이 없다.
한데, 얼핏 희미한 야옹 소리가 어디선가 난다.
하지만 주위를 아무리 들러보아도 아무도 없다.
혹시 잘못 들었는가 싶어 저만치 돌아서다,
아쉬움에 다시 발걸음을 돌려 살폈다.
이 때, 어디선가 다시 희미한 야옹 소리가 난다.

문득 눈을 들어 위를 쳐다보니,
개집 옆에 서 있는 나무 위에 그들이 전부 올라가 있는 것이다.
늦가을 지나도록 감나무 가지에 남겨진 까치밥인 양,
바알간 슬픔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아무리 불러도 내려오지 않는다.
무엇인가 깜짝 놀란 모습이다.
순간 얼마 전 여기를 덮쳤을 검은 파문(波紋)이
내 팔뚝에 잔 소름을 만들어가며 지르르 지난다.
그 정체가 무엇일까?

주인에게 전화를 하니 불통이다.
바로 옆에 있는 그 집을 찾아갔으나 부재중이다.
불통(不通), 부재(不在) 이 이중의 부정이
정오의 더위처럼 무겁게 마음을 짓누르며
사태가 더욱 심상치 않음을 짐짓 예언하고 있다.

***

오늘 그가 있을 만한 시간에 다시 그 집을 방문했다.
먼젓번에 팬츠만 입고 문을 살짝 열고는 빠끔 얼굴만 내밀어 맞이하던 주인은
이번엔 집안으로 들어오길 권한다.

나는 안다.
불행한 소식은 언제나 이런 이례적인 형식을 빌어 통고된다.
병사들의 전사통지서도 역시 이런 형식을 거쳐서 유족들의 넋을 앗아 슬픈 바다로 밀어 던진다.

파국은 예고 없이 다가오지만,
파국의 통보는 언제나 그러하듯이,
어색하고 낯선 모습으로 우리 가슴을 화인(火印)처럼 저르르 지진다.
(※. 파국이론 :  ☞ 2008/02/18 - [소요유/묵은 글] - 예측술(豫測術) - ①/②)

전날, 커다란 백구가 와서 덕순이를 덮쳤다고 한다.
그리고 이내 절명했단다.

겨우 7개월, 이 박명(薄命)한 신세라니,
덕순아, 너를 내가 영결(永訣)함이니,
오늘 새벽부터 창문가에 그리 매미가 따갑게 울었나보구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나는 주인에게 그가 묻힌 곳으로 안내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순간 그의 얼굴엔 꺼리는 기색이 지난다.
이쪽에서 청했는데, 상대가 꺼리는 모습을 보일 때,
두 가지 대응방식이 가능하다.
상대의 처지를 고려해 부탁을 거두는 것이 하나요.
부탁한 내용을 중시하여, 그 청함을 사양하지 않는 것이 또 하나다.

나는 차후에 덕순이를 조상차(弔喪次) 위로하여야겠기에 그 위치를 알아야 하기도 하지만,
그 무덤 자리 처리를 확인하여야겠기에, 재삼 청했다.

그는 슬그머니 삽과 장갑을 챙긴다.
이미 묻힌 아이한테 삽과 장갑이 왜 필요하겠는가?
그 역시 이미 알아서 다음을 예비하고 있음이다.

그를 앞장 세워 덕순이가 묻힌 곳으로 올라갔다.
과연 짐작과 다름이 없었으니, 덕순이는 골짜기 음지에 묻혀 있었다.
골짜기는 장마에 물이 몰려들어 흙이 휩쓸려 내려가기 쉬울뿐더러,
해가 들기 어려워 낙엽이 썩고, 벌레가 끓어 음택(陰宅)으로는 꺼리는 바다.

양지 바른 곳에 망자를 모시는 이유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중요한 것 하나는 시신의 육탈(肉脫)을 돕기 위함이다.
곱게 살은 썩어지고 뼈만 남은 상태를 육탈이라고 하거니와,
이도 오래 지나면 뼈까지 삭는다.
무릇 양지라야, 정갈하게 시신이 산화(散華)되며,
구천(九泉)에서 편히 쉬실 수 있음이다.

나는 답답한 심사를 이기지 못하고,
지금, 이 자리에, 걸맞지 않게도 그에게 새삼 이른다.

발복(發福)이란 게 다른 게 아니다.
내 집안에 들어온 생령(生靈)은 그게 사람 자식이든 동물이든,
이내 식구인즉 여읠 때일지언정,
옳게 이별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하니, 보내는 이를 정갈한 곳에 모셔 이승을 가르게 하는 게라,
이 때 바로 ‘정성’으로 임하여야 하니,
그 때라서야 묏자리 써놓고 풍수를 따질 바도 없이,
감히 발복(發福)함을 논할 수 있음이다.
하니, 발복(發福)이라 함은 음택풍수의 옳고 그름의 가름이 아니라,
애틋하고 간절한 ‘정성’ 한 가지에 달려 있음이니,
그 뜻을 애오라지 살펴야 할사.
이리 이르며 숨을 토해냈다.

나는 시간을 짚고 태양의 위치를 살펴 그럴듯한 남향받이 양지(陽地)를 하나 골라낸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마침 그 옆 마루 등성이가 그럴듯하다.
골과 마루를 분별함은 곧 음양고저를 고르는 일이라,
이리 가까이 있는 곳을 그는 왜 보지 못한 것일까?

무엇인가를 묻을 때는 땅을 파내야한다.
땅을 파려면 땀을 흘리는 수고를 해야 한다.
하기에 이를 아끼려면, 우선 움푹한 곳에 눈이 가게 마련이다.
골짜기를 취하여 몇 삽을 떠내면 이내 움푹 패인다.
게다가 좌우 흙을 긁어 덮기도 용이하니, 일은 바로 수월히 끝난다.

보통, 숨기어 몰래 하는 암장(暗葬), 장물(藏物)의 경우에는 백이면 백 모두 골짜기에서 치러진다.
급히 천광(穿壙) 또는 굴토(掘土)하는 이의 모습을 숨기기에도 골짜기는 사뭇 좋다.
물건도 아니오, 암장을 기할 바도 아니라면,
땀 흘리는 수고 이전에 명도(冥途)길에 든 망자의 안녕을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음이다.
이를 나는 그저 한마디 ‘정성’이라고 부른다.
내가 진심으로 애틋한 마음이 이는데, 어찌 정성스럽지 않을 손가?

음택(陰宅)이든 양택(陽宅)이든 볕 내리는 양달에 쓰지 아니하면 모두 흉하다.
이런 것은 풍수에서 말하는 혈(穴), 사(砂) 따위를 몰라도 절로 느껴 알게 된다.
남을 향한 간절한 ‘정성’만 있다면, 골짜기가 아니라 마루에 터 잡을 생각이 절로 일어난다.

나는 그에게 곧 천장(遷葬)해야겠다고 말했다.

(※
암장(暗葬) : 남 모르게 장사를 지냄.
장물(藏物) : 물건을 숨김.
명도(冥途) : 사람의 죽은 뒤에 간다는 영혼의 세계
음택(陰宅) : 무덤을 풍수에서 일컫는 말.
양택(陽宅) : 살아 있는 사람의 집.
혈(穴)       : 음양(陰陽)이 합국(合局)되고 산수(山水)의 정기(精氣)가 응결(凝結)된 곳.
                  (발췌 : http://chungsonghak.com/)
사(砂)       : 혈장(穴場)을 중심(中心)으로 한 주위(周圍) 이십사방(二十四方)을 둘러싼 대소(大小)의
                  봉만(峰巒)을 포함해서 암석(岩石), 수목(樹木), 강(江), 바다, 호수(湖水), 사막(沙漠),
                  건물(建物), 평야(平野), 구릉(丘陵), 도로(道路) 등을 총칭한 말.            
                  (발췌 : http://chungsonghak.com/)
천장(遷葬) : 천묘(遷墓)라고도 하니, 곧 묘를 다른 곳으로 옮김.
)

시신은 전통적으로 동침(東枕) 아니면 북침(北枕)으로 눕힌다.
나는, 그를 북침(北枕)으로 하되, 사람처럼 앙와(仰臥)를 할 수 없음이니,
동면(東面)으로 누일 계획을 세웠다.
그러하니, 남북으로 길게 터를 잡아 파내야 한다.
좌향(坐向)을 이리 잡자하니, 흘러내린 마루(등성이)는 얼추 남향이나,
잔 나무들이 앞을 조금씩 가린다.
그렇다고 대놓고 터진 곳에 자리 잡을 수도 없으니,
이것으로 그만 참아내야 한다.

(※
북침(北枕) : 망자의 머리(※ 枕:베개, 베다)를 북쪽으로 둠을 이름.
앙와(仰臥) : 하늘을 보고 누운 것이니, 곧게 몸을 펴서 위를 보고 바르게 누운 모습을 이른다.
동면(東面) : 얼굴이 동쪽을 향하게.
좌향(坐向) : 묏자리에서 등진 방위(坐)에서 정면으로 바라 보이는 방향(向)
)

그가 삽을 들고 땅을 파니 마사토가 곱다.
우리 어렸을 적에는 이런 산흙을 색비레라고 불렀다.
엷은 핑크빛이 도는 흙이 벗겨져 땅에 떡가루처럼 부서져 반짝인다.
이런 산흙을 보면 나는 한참이나 멀리 사라져버린 내 유년의 기억 속으로 잠긴다.
지금도 산동네에 살지만, 내가 어렸을 때, 살던 곳은 조금만 파면 색비레가 바로 나왔다.
너무 곱고 예뻐 입안으로 넣으면 솜사탕처럼 사르르 녹을 것 같은 착각에,
자르르 가벼운 흥분이 가슴팍을 번져가곤 했다.
그 잃어버린 서글픈 동화의 나라로 나는 순간 아스라이 빨려 들어간다.

그의 삽질이 영 서투르다.
명색이 2년차 주말농부인 내가 삽을 빼앗아 널찍하니 시원스레 파내었다.

그에게 삽을 건네며, 먼저 묻힌 덕순이를 파내라고 시킨다.
묻은 바를 잘 모르니, 내가 파다가 잘못하면 다칠 수가 있다.

팔 것도 없이 바로 덕순이가 드러난다.
대충 파고 겉에다 썩어가는 낙엽더미를 붓고 말았으니 어련하겠는가.
얼굴은 비닐봉지로 감싸져있다.
등산길에 버려진 비닐조각은 아무리 작더라도 질색인 나는 저것을 왜 씌웠는가 묻는다.
멱을 물렸기에 피가 흘러 그리했단다.
나는 그것을 벗기라고 명령한다.
그래, 나는 단호히 명령하고 만다.

하루 사이에 덕순의 얼굴엔 조그만 구더기가 기어 다닌다.
이런, 가여운 노릇이라니.
젖은 낙엽에 덮여 이내 벌레가 슳은 게다.
그는 덕순이를 차마 꺼려 만지지 못한다.
나는 그를 밀치고 덕순이를 들어내 새로 판 광(壙)으로 옮겼다.

(※ 광(壙) : 시체를 묻기 위하여 판 구덩이)

바닥에는 마른 낙엽을 깔고 그를 눕혔다.
덕순아, 잘 가.
나는 덕순의 몸을 쓰다듬으며,
잠든 그를 가만히 불러본다.
가엽고, 애틋한 마음인들 왜 아니 없겠는가마는,
차마 제대로 돌보지 못한 그에게 속죄하듯 그리 불러보았다고 일러야 옳으리라.

처음에는 나를 보면 무서워 개집 뒤로 숨던 그.
이제는 나를 보면 꼬리를 치며, 다리를 빙그르 감아들며 좋아라 야단이었다.
동산을 하나 넘어 이 녀석들에게 오는 수고로움도,
고양이들의 길마중과, 덕순이의 해맑은 웃음에
비개인 날 아침처럼 바로 말끔히 씻기지 않았던가?

이제 그는 이리 차가운 땅에 누워,
이 한 많은 이승을 떠나가고 있음이다.

그 누가 감히 말했던가?
‘개똥밭에 뒹굴어도 이승이 좋다고.’
내가 잠깐 그들에게 먹이를 주는 동안에도 댓방 이상 모기에게 뜯긴다.
항차, 그곳에 묶여 종일 지내는 그들은 오죽하겠는가?
아, 차라리 갈 것이라면 먼저 가는 것이 나았을까?
이 모진 세상, 그들에겐 차라리 죽음이야말로 유일한 해방구가 아니런가?

그렇다면, 누가 그들을 저 험한 곳으로 몰아넣었는가?
이 물음에 답하라.
이 물음에 차마 답할 수 없다면,
그대야말로 혐의가 있음이 아닌가?
나는 그대를 하늘에 고발한다.

덕순이 주인 보고 천개석(天蓋石)을 구하라 자세히 일러 분부한다.
하지만, 가근방에 마땅한 것을 찾기 어렵다.
대신 나뭇가지를 구해 외(椳)얽듯 위를 얼추 가리고 흙을 덮었다.

(※ 천개석(天蓋石) : 천장을 덮는 돌. 무덤 위에 이로 덮으면 짐승의 해로부터 안전하다.)

겉은 사람처럼 성분(成墳)을 할 수는 없으니, 평장(平葬)으로 하되,
초분(草墳)처럼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늘어놓아 사람의 이목을 피하고,
짐승의 접근을 어렵게 조치하였다.
나중에 다시 와서 단속을 하겠지만,
오늘은 총망중에 우선 이리 마치기로 한다.

(※
성분(成墳) : 봉분을 만드는 일.
평장(平葬) : 봉분을 만들지 않고 평평하게 매장하는 일.
)

글을 쓰는 동안, 햇님은 구름 뚫고 빛살을 내비치시는데도,
돌연 굵은 소낙비가 쏟아진다.

덕순아,
너의 눈물은 어이하여 저리도 해맑은가?
나는 그저 미안할 뿐이구나.

안녕,
덕순아.


※. 이전 관련 글
☞ ① 2008/06/25 - [소요유] - 일련탁생(一蓮托生)
☞ ② 2008/08/01 - [소요유] - 복 받을 거예요.
☞ ④ 2008/10/03 - [소요유] - 검비와 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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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 2008. 8. 9. 2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