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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과 생명

생명 : 2008. 8. 22. 22:32


밥과 생명

생명이 아무리 고귀하다한들, 밥을 먹지 못하면 죽는다.
밥 보다 사랑이, 정의가 중하다고 외친들 밥 없이 이들 가치가 지켜질 수 없다.

맹자(孟子)의 항산항심(恒産恒心)이란 이를 잘 지적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생활이 안정되지 않아도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뜻있는 선비만 가능한 일입니다.
일반 백성에 이르러서는 경제적 안정이 없으면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다면
방탕하고 편벽되며 부정하고 허황되어 이미 어찌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들이 죄를 범한 후에 법으로 그들을 처벌한다는 것은
곧 백성을 그물질하는 것과 같습니다."
(無恒産而有恒心者 唯士爲能 若民則無恒産 因無恒心 苟無恒心
放僻邪侈 無不爲已 及陷於罪然後 從而刑之 是罔民也).

관중(管仲) 역시 이리 말했다.

“창고에 곡식이 가득 차면 예절을 알고, 의식이 갖추어지면 영욕을 안다"
(倉庫實則知禮節 衣食足則知榮辱)
“왕은 백성으로 하늘을 삼고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
(王以民爲天 民以食爲天).”

서경(書經)을 보면,
주(周)나라 무왕(武王)에게 기자(箕子)가 나라를 다스리는 법을 설명하는 말이 있다.

“나라를 다스리는 여덟 가지 중 으뜸은 먹는 것이요, 둘째는 재물이다.”

내가 오늘 이런 말들을 떠올리고 있는 것은,
먼저 쓴 글 '☞ 2008/08/09 - [소요유] - 덕순아'에 나오는 이들 때문이다.

강아지 하나는 사고로 잃었지만, 아직도 고양이 두 마리가 살고 있다.
지나는 길에 이리 들리면, 고양이들이 내게 달려온다.
배를 잔뜩 곯아 먹이를 주는 줄 알고 이리 반기는 것이다.
아랫배를 만져보면 홀쭉한 것이 해가 중천을 떴는데도 아직 밥을 먹지 못하고 있기 일쑤다.
주인이 밤일을 한다한들, 그리고 한 끼 밖에 챙겨주지 못할 형편이라 한들,
미리 넉넉히 주면 이들이 매일같이 이리 배를 곯겠는가?

요즘은 못 먹어서 걱정인 사람보다 많이 처먹어서 다이어트를 한다는 등,
난리들을 치는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 세상이다.
하니 무항산무항심(無恒産無恒心)이 아니라,
실인즉 욕심이 등천(登天)하여 그 끝 간 데를 아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즉, 고양이에게 한 줌 더 먹이를 준다한들,
그게 결코 자신에게 손해날 바도 별로 없다.

생명이 밥으로 지탱하는 바,
그 명(命)의 본바탕이 그에 터하고 있음임을 알지니,
이게 어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이겠는가?

동물도 제게 밥 갖다 먹이는 사람을 좇아 꼬리를 치며 반긴다.
이들 고양이도 내가 다가가면 화들짝 놀란 듯 달려 나오며 마중을 한다.

“먹어야 산다.”
이 당연한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 아래 이야기들을 죽 꿰어 상기시키노나니,
이 때래서야, 이내 사람 또는 동물이 간단하면서도 준엄한 이 이치를
한 치인들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임을 알리라.

밖에는 비가 내리신다.
비 내리는 날,
모든 배 곯는 중생(衆生)에게 삼가 이 글을 회향(廻向) 한다.

1. 일반지덕필상(一飯之德必償)

사기(史記)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이미 앞 선 글(☞ 2008/02/19 - [소요유] - 애자지원필보(睚眦之怨必報))에서 다룬 바 있다.
해서 간략히 줄여 밝힌다.
진(秦)나라 재상에 까지 오른 범수(范睢)는
이에 이르도록 갖은 고생을 다하는데,
그 동안 입은 은혜와, 원수를 낱낱이 다 갚는다.

“일반지덕(一飯之德)도 반드시 은혜를 갚고, 애자지원(睚眥之怨)도 반드시 갚는다.”
(一飯之德必償, 睚眦之怨必報)

일찍이 범수 자신에게 위해를 가했던 당사자인
위(魏)의 수고(須賈)가 사신이 되어 진(秦)나라에 온다.
범수는 몰락한 처지로 짐짓 거짓 꾸미고 수고를 맞이한다.
이 때, 수고는 범수를 동정하여, 음식과 솜옷 한 벌을 내준다.
범수는 이미 진나라 재상이 되었건만 이리 거짓 연출하여 수고를 시험했음이니,
자신에게 음식과 옷을 내준 것을 가상히 여겨, 원수지만 수고의 목숨만은 살려준다.
이를 일반지덕(一飯之德)이라 한다.

밥 한 술을 베풀고 목숨을 건진 이야기인 것이다.
배곯을 때, 남이 베푸는 인정이란 것은 뼈에 사무치는 것이다.

제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를 저리 곯게 하고,
자신은 해가 중천을 넘어가고 있는데, 저리 태평스럽게 잠을 잘 수 있음인가?
아지 못해라, 저 마음보를.

2. 영첩보은(靈輒報恩) - 호장지수(壺漿之酬)

진(晉)나라 영공(靈公) 당시 재상 노릇을 하고 있던 조돈(趙盾)은
간신 도안가(屠岸賈)와 불화한다.
영공은 포학, 방탕으로 나라를 제대로 돌보지 않고 연일 놀이에 빠졌다.
조돈의 충정어린 간언(諫言)이 거슬릴 뿐이다.
마침내 영공은 도안가와 함께 조돈을 죽이려 한다.
거의 죽음에 몰린 상황에서 영첩(靈輒)이란 자가 갑자기 나타나 조돈을 구한다.

조돈은 5년 전 구원산(九原山)에서 사냥을 하고 돌아오다 큰 뽕나무 밑에서 잠시 쉬었다.
그 때 뽕나무 그늘에 한 사람이 누워 있었다.
조돈은 혹시 자기를 죽이려는 자객이 아닌가 의심하고 그를 문초했다.

“네 이름이 뭐뇨?”
“영첩이라고 합니다.”
“어째서 이런 데 누워 있나뇨?”
“저는 위(衛)나라에 가서 삼년 동안 유학하고 지금 돌아오는 길입니다.
돈도 없고 얻어먹지도 못해서 굶은 지 사흘이 됐습니다.”

조돈은 그를 불쌍히 여기고 사람을 시켜 그에게 밥과 고기 포(脯)를 줬다.
영첩은 조그만 광주리를 내어 받은 음식 반을 덜어서 넣고 반만 먹었다.
조돈이 묻는다.

“음식 반을 광주리에 넣어 두는 것은 무슨 뜻이뇨?”
영첩이 대답한다.
“저에게는 늙은 어머님이 서문(西門) 근처에서 살고 계십니다.
저는 오랫동안 다른 나라에 가 있어서 아직 어머님이 생존해 계시는지 어쩐지 그것마저 모릅니다.
이제 집까지 몇 리나 남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살아 계시면 대인(大人)이 주신 음식을 어머님께 드리려 합니다.”
조돈은
“그대는 효자로다. 그러나 염려 말고 그 음식을 다 먹어라.”
하고 따로 둔 자루 속의 음식과 고기를 다 여첩에게 내줬다.
오늘날도 강주(絳州)에 가면 전반판(膞飯坂)이란 곳이 있다.
즉 조돈이 영첩에게 음식을 준 곳이라 하여 그 때부터 그리 부른다.

고픈 배에 새겨진 기억은 금석(金石)에 새긴 글보다,
더 강하게 남아 있음이다.
그러하니 밥이야말로 생명을 기르고 보전하는 본바탕임을 알라.
저 고양이의 곯은 배를 주인이 궁휼(矜恤)치 않으면 어이하리.
잊지 말라,
‘밥의 기억을!’

3. 식지동(食指動)

이번에는 정(鄭)나라 영공(靈公)과 얽힌 이야기다.
(※. 자고로 영(靈)은 포악한 정치를 펴고, 방탕하여 나라 일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왕에게
붙이는 시호(諡號)이다.
이번 정영공(鄭靈公)과 위에서 거론한 진영공(晉靈公)은 물론 제영공(齊靈公), 진영공(陳靈公) 등
영공(靈公)이라 불려지는 왕들은 모두 사치가 질펀하고 정사를 돌보지 않았음이다.)

공자 귀생(公子 歸生)과 공자 송(公子 宋)은 정(鄭)나라 귀족이었다.
그 둘은 어느 날 입조하려던 참이다.
공자 송의 식지(食指)가 끄떡끄떡 움직였다.
 
식지(食指)란 무엇인가?
둘째손가락을 이르는 말인데, 음식을 먹을 때는 반드시 그 둘째손가락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공자 송은 움직이는 식지를 공자 귀생에게 보였다.
공자 귀생이 묻는다.

“그것 참 이상하다. 늘 그렇게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이는가?”
 
공자 귀생이 자랑스레 대답한다.
“이렇게 손가락이 움직이는 날에는 반드시 별미를 먹게 되지요.
내가 사신으로 진(晉)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에는 석화어(石花魚)를 먹었고,
초(楚)나라에 갔을 때는 천아(天鵝)를 그 후에는 다시 합환귤(合歡橘)을 먹었소.
이상한 음식을 먹게 되는 날은 손가락이 이렇게 미리 움직이오.
지금까지 한 번도 맞지 않은 일이 없었는데,
오늘은 무슨 별미를 먹게 되려는지 궁금하구려.”

두 사람이 조문(朝門)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내시(內侍)가 외서 재부(宰夫)를 부른다.
(※. 재부(宰夫): 주방장)
공자 귀생이 내시에게 묻는다.

“네 무슨 일로 재부를 부르나뇨?”

내시가 대답한다.

“오늘 새벽에 한 백성이 한강(漢江)에서 큰 자라를 잡았다고 주공께 바쳤습니다.
그 자라는 무게가 200여 근이나 됩니다.
지금 재부에게 그 자라로 국을 끓이게 하려고 부릅니다.
상감께서 그 자라 국을 모든 대부(大夫)에게도 나눠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정영공에게 알현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정영공이 묻는다.

“경들은 오늘 무슨 일이 있기에 얼굴에 기쁨이 가득하나요?”

공자 귀생이 대답한다.

“신들이 궁으로 들어오기 전에, 송의 식지가 문득 저절로 움직였습니다.
송은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그 날은 별다른 음식을 먹게 된답니다.
그런데, 지금 들어오다가 당하에 큰 자라가 매어 있는 걸 봤습니다.
아마 오늘은 자라 고기 맛을 맛보게 되나보다 하고 그래서 함께 웃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영공은 장난조로 말한다.

 “맞고 맞지 않는 것은 과인에게 달려 있다.”

마침내 대부에게 자라 국을 대접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영공은 미리 한 그릇을 부족하게 준비하도록 재부에게 일렀다.
재부가 자라 국을 대신들에게 올리다가 짐짓 자릿수를 헤아려 보더니 아뢴다.

“자라국 한 그릇이 모자라는데 어찌하리까?”

“저 귀생 앞에 갖다 놓아라.”

하고 크게 웃으며 정영공이 공자 송에게 말한다.

“과인이 모든 신하에게 국을 대접하려는데, 한 그릇이 부족하다니 그대는 맛을 못 보겠구나.
이러고야 경의 식지가 아무리 저절로 움직인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순간 공자 송은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것이 참을 수 없는 분노로 변했다.
공자 송은 발딱 일어났다.
그는 급한 걸음으로 가서, 정영공 앞에 놓인 자라 국에 손가락을 넣었다.
그는 자라 고기 한 점을 집어내어 마구 씹으면서 대답한다.

“신은 이미 자라 고기를 맛보고 있습니다.
어째서 신의 식지가 영험하지 않다고 하십니까?”

공자 송은 말을 마치자 분연히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런 사단이 벌어진 이후,
마침내,
송은 사병을 비밀리에 동원하여 야반에 제사를 올리려고 태묘(太廟)에 나아가 잠을 자고 있는
영공을 흙부대로 눌러 시해(弑害)하고 급병으로 죽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 후 송은 왕의 시해에 대한 초(楚)나라 장왕(莊王)의 추궁을 받아 죽음을 당했고,
이미 죽은 귀생은 무덤에 형벌이 가해졌다.
실은 이는 모두 정양공의 동생인 공자 거질(公子 去疾)에 의해 주도 되었으니,
공자 거질은 초를 두려워 하여, 미리 엎드려 이리 조치하고,
영수(潁水) 북쪽까지 쳐들어와 머무른 초장왕에게 동맹을 청하는 구실로 삼았다.

4. 일배양갱이망국(一杯羊羹而亡國) - 양갱망국(羊羹亡國)

중산국(中山國)이라는 나라가 있다.
향연을 베풀고 양고기 국물을 신하들에게 나누어주던 차,
마침 사마자기(司馬子期)에 이르러 국물이 떨어져 주지 못했다.
사마자기는 왕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초(楚)나라로 도망갔다.
그는 초나라 왕을 충동여 군사를 일으키고,
스스로 앞잡이가 되어 중산국을 쳤다.
중산국은 여지없이 격파 당하고, 왕은 도망갔다.
왕이 국외로 도망치고 있을 때, 창을 든 두 사람이 뒤를 따라 오고 있었다.
왕이 돌아서서
“누구냐?”
고 묻자 두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
“여러 해 전에 왕으로부터 한 끼의 식사를 대접 받아 아사(餓死)를 면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아들입니다.
아버지는 죽기 전에 ‘중산에 일이 일어나거든 죽음으로써 그 은혜에 보답하라’라고
유언을 하셨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의 은혜에 보답할 기회라고 생각하여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이 말을 듣고 왕은 이렇게 탄식했다.

“원한은 심천에 있지 않다. 다만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나는 한 그릇의 양고기탕 때문에 나라를 잃었고, 한 끼의 음식으로 두 명의 용사를 얻었구나.”
仇恨不在乎深淺,而在於是否傷了別人的心。我因為一杯羊肉湯而亡國,卻因為一點食物而得到二位勇士。

(※. 참고로 양갱(羊羹)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인다.
원래 양갱(羊羹)은 위 이야기처럼 양고기 국물, 즉 스프를 말한다.
그런데, 이것을 후에 중국으로 유학한 일본 승려가 귀국시 일본에 전했다고 한다.
승려는 육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팥, 밀가루, 갈분 등을 섞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 후, 절에서 만들어진 양갱은 무가 사회에 널리 퍼져 연회나, 다도회 등에 쓰였다 한다.
예전에 양갱을 먹다가 羊이란 글자가 들어가 왜 하필 羊인가 궁금해 하였던 적이 있었다.
이제 양갱을 먹을 때에는 이 고사를 떠올릴 사,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 그 심천(深淺)불문, 그 대가가 자못 큼을 깨달아야 할지니.)

5. 위헌공과 손림부

위헌공(衛獻公)의 이름은 간(衎)이다.
그는 주간왕(周簡王) 10년에 아버지 위정공(衛定公)의 뒤를 이어 즉위했다.
그는 아버지가 죽어 상주(喪主)가 되었으나 추호도 슬퍼하지 않았다.
그는 왕이 된 후로 포학무도(暴虐無道)하였다.
그의 취미는 음악과 수렵(狩獵) 두 가지 뿐이었다.

어느 날 위헌공은 상경(上卿) 손림부(孫林父)와 아경(亞卿) 영식(寧殖)에게
수일 뒤 점심을 함께 하자고 약속을 했다.
그 약속한 날이 왔다. 손림부와 영식은 조복(朝服)을 입고 궁문(宮門)에 가서
상감이 부르기만 기다렸다.
하지만, 점심때가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해가 져서 저녁때가 되었다.
종일 굶은 그들은 매우 시장했다.
그래서 그들은 굳게 닫힌 내궁문(內宮門)을 두드리고 상감을 뵙겠다고 청했다.
내시가 나와서 대답한다.

“지금 상감께선 후원에서 활을 쏘는 중이시오.
두 대부께서 상감을 뵈올 일이 있거든 직접 후원으로 가봅시오.”

이 말을 듣자 손림부와 영식은 대로했다.
그들은 시장한 것을 참고 후원으로 갔다.

왕이 묻는다.

“무슨 일로 왔나뇨?”

“주공께서 점심식사를 하자고 약속하신 날이기에 신들은 지금까지 내궁 밖에서
기다리다 못해 들어왔습니다.
지금 몹시 시장하지만 혹 분부 거행을 않았다는 꾸중을 받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가. 과인은 활 쏘는데 정신이 팔려서 그대들을 잊었다.
그대들은 물러가라 다음날 다시 약속하리라.”

...

후에 손림부는 반란을 일으키고,
끝내 위헌공은 제나라로 망명하게 된다.

後來,公元前559年,衞獻公邀請孫林父(孫文子)和寧惠子(寧殖)飮宴。這兩個人一看是國君的宴請,都鄭重其事的穿了朝服,一大早在朝堂待命。
 不過,這個衞獻公眞够牛氣,一直等到太陽快下山了,還在獵場打獵。朝堂等候的兩個大夫一看天快黑了,還沒吃上飯,也是着(著)急啊!就找到了衞獻公。結果,這個衞獻公却一點道歉的意思都沒有,頭上戴的帽子也不摘,就大模大樣的和兩位餓了一天的大夫説話。
 這兩人一天沒吃飯,穿戴整齊的受了一天罪,心裏能不窩火嗎?又看見衞獻公這個態度,也不説趕快準備飯,向兩人道歉,大怒而出。
 孫文子一怒,就回到了自己的封地,然後派家臣孫蒯拜見衞獻公。

***

이게 어찌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문제이리요.

사람에겐 이게 음식을 넘어 자존심에 관련된 문제로 비화(飛火)한다.
정말 그러한가?
제대로 말하자면, 기껏(?) 음식 문제가 자존심으로 비화하는 것이 아니다.
자존심이란 게, 실인즉 중차대(重且大)한 음식의 득부득(得不得)에 바로 터하고 있음인 게다.
“음식을 먹지 못하면 죽는다.”
이 자명한 명제를 그 누구라 에둘러 갈 수 있으랴.

동물들이라 말은 못하지만,
더욱 그들에겐 음식이야말로 절체절명(絶體絶命)의 문제다.
저들 절절한 마음을 외면하지 말라.

밖에 비가 나리신다.
비 나리는 날,
배가 고프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 누가 이를 겪지 않고 한 터럭인들 제대로 알 수 있을런가?
춥고, 배 고픈 저들이 밖에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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