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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표지

소요유 : 2009. 12. 6. 19:13


어떤 사람이 점원 노릇을 몇 개월 했다.
주인은 그를 유심히 관찰하였던 모양이다.
주인이 있건 없건 성실히 일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는,
조건 없이 거액을 그에게 투척하였다.
그 점원은 이를 밑천 삼아 청과 점포를 열었다.
이게 대성공을 했다.
그는 너무 바빠 그를 도와주었던 이를 만나 뵐 틈조차 내기 어려울 정도라 한다.
(※ 참고 글 : ☞ 2009/08/11 - [소요유] - 귀인(貴人))

어떤 분이 집을 새로 지으려고 했다.
한 다리, 두 다리 건너 연줄을 쫓아 집을 지어줄 이 하나를 소개 받았다.
그를 면담한 자리에서 건축주는 아무런 조건 제시도 없이,
자신의 집을 지어주길 바란다고 전격 부탁을 했다.
한눈에 사람을 알아본 것이리라.
오히려 당황한 것은 이런 주문을 받은 이였다.
건물 평수도, 비용도 정하지 않고 그냥 맡겨버렸으니 실로 난감한 일이었으리라.
이 이야기는 최근 당사자로부터 직접 들었다.

내 경우에도 이러한 예가 하나 있다.
하지만 오늘은 아껴 뒤로 미룬다.

사람이 사람을 알아보는 데는 별로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거울에 비추어보듯 대개는 그 사람의 면모가 거지반 드러나게 돼있다.
세월에 닦이다보면 이런 정도의 감식안은 절로 갖추게 된다.

사람이 나이를 먹게 되면,
어느 날 문득 뒤를 되돌아보게 된다.
자기 자신을 반추하는 것이야 평생 하는 것이지만,
그 나이의 고비에 이르르면 이쯤에서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하지 않았던가?
여우가 죽을 때면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둔다고 했음이다.
아프고 초라했던 지난 젊음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 늙은이는 이제라도 여우에게 배워야 한다.

마침 그 때 어린 친구가 하나 눈에 띈다.
그의 처지가 지금은 세가 막혀 곤궁(困窮)에 빠져 있지만,
본바탕이 올곧고 착한 이가 있다면,
그를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자신의 처지가 여유가 있든 아니든 이런 마음이 들 때,
위와 같은 아름다운 역사가 일어난다.
마치 부싯돌에 부시가 맞부딪혀 불꽃이 일어나듯,
제대로 된 농부가 쓰레기밭에 버려진 종자라도 바른 것이라면 찾아 옮겨서는 제대로 보살펴 키우듯.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내가 남에게 이런 빛이 되고 희망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런 기회조건의 주체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가슴 벅찬 노릇인가?
이를 깨달을 수만 있다면 그 나이의 무게가 얼마나 값진가?

반면 나이를 먹을 대로 먹었으면서도,
내내 자신의 이해를 위해 남을 꾀고, 속이며, 이용하려는 사람도 있다.
상대가 그로 인해 상처를 받고 원한을 품게 되기까지 한다면,
도대체 그의 남은 생이란 얼마나 추레하니 누추한가 말이다.
남에게 빛, 희망이 되지는 못할망정 훼방꾼이나 되면서,
다 늙도록까지 악착같이 제 잇속을 챙기려는 이도 세상엔 있는 것이다.
이런 이가 그대 주변에 있는지 둘러보라,
가까이 사귐에 주의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우리가 점집에 가면,
‘그대는 모월모시(某月某時) 동남방(東南方)에 가면 귀인(貴人)을 만나리라.’
이런 점괘를 일러 준다는 소리를 듣곤 한다.

이때의 귀인이란 딱히나 동남방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 청과물 가게 젊은 청년, 그리고 건축 청부를 받은 이,
이들은 스스로 오래전부터 자신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나는 신뢰의 표지라고 부른다.

얼굴에 크게 쓰여진 신뢰의 표지

그리고, 이 표지를 읽을 수 있는 자가 이 때 비로소 귀인의 역을 맡게 된다.
귀인이 덩그란히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실인즉 귀인을 부르는 이가 짝으로 준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고장난명(孤掌難鳴)
외손바닥으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점집을 들락거리면서 언제 어디에서 귀인을 만나게 되는가 하고 묻는 이는,
참으로 염치없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귀인은 내가 그리로 가서 만나는 것이 아니다.
귀인은 내가 신뢰의 당체가 되어 그를 불러내는 것이다.
귀인은 실인즉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아마도 정작 귀인 자신은 상대로 인해,
비로소 귀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마냥 기뻐하지 않을까?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만치 더 뿌듯한 일이 어디에 있음인가?
상대가 없었다면 그 역시 귀인이란 이름을 얻지 못했을 터다.

비인부전(非人不傳)
사람이 아니면 전하지 않는다.
사부 역시 법다운 제자를 만나지 못하면,
영영 자신의 재주를 후세에 남겨 전해줄 수 없는 것이 아니랴?

모두 고마운 노릇이다.
세상의 이치는 이러해야 하지 않을까?
실로 아름다운 관계는 이렇게 탄생하는 것이다. 
이를 일러 우리는 옛부터 가연(佳緣)이라 불렀다.
아름다운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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