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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信), 신용(信用), 이용(利用)

소요유 : 2009.12.10 11:24


내가 어떠한 이유로 근래 신(信)에 대하여 고구(考究)할 기회가 있었다.
늘 그러하듯이 계곡 얼음 밑장으로 찰랑찰랑 물방울들이 흘러갈 때는,
아직도 추운 겨울에 익숙하여 봄이 가까이 와있음에도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날씩 확 풀려 얼음장이 깨지고,
와당탕 소리를 내며 물살이 거세게 흘러내리면,
그제서야 와~ 봄이 왔구나 이리 탄성을 지른다.

그렇다한들, 당시 앞전에 봄이 와 있음을 몰랐던 것은 아니나,
겨울이란 타성에 젖어 있거나, 봄을 인식할 필요가 절박하지 않기에,
그냥 그리 시간에 맡겨두곤 한다.
시간 앞엔 그 무엇이든 종국엔 면사(面紗)를 벗기우고 만다.
어차피 봄은 오는 것이니 겨울 한가운데 내춘(來春)을 안달할 까닭이 있겠는가?
다만, 겨울을 건너기엔 아직 멀어 무료하거니와,
내 이제 와장창 깨지는 얼음장 앞에 서서 그 봄의 재래(再來)를,
새삼 음미해보며 낙락하니 봄잠을 앞서 겨워하고자 하노라.

맹자 이야기를 다시 앞에 내세워두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잘 모르면서도 이리 꺼내들자니,
얼마 전 맹자 말씀 한번 들추었다가 눈총 받은 적이 있어 조심스럽다.
하지만, 지부지(知不知)를 떠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굳이 외면할 까닭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붕우유신(朋友有信)
두말 할 일도 없이 삼강오륜(三綱五倫)의 하나이다.
이는 애초 맹자(孟子)에 등장한다.
게서 ‘순(舜)이 말한 인륜’이라고 가르쳐지고 있다.

여기서 붕우(朋友)란 원래 왕을 지키는 상하 귀족층 자제를 아우르는 말이거니와,
신(信) 역시 왕에게 충성을 바치는 가운데 대의를 위해 동료들 간에,
책임을 다하고 신의를 지켜야 한다는 말이었다.
본시 여기서 말하는 대의란 물론 왕을 향한 충의를 뜻한다.

하지만 후대로 내려오면서 붕우가 요즘 식으로 벗이란 의미로 전화되고,
신(信) 역시 왕에 대한 충성을 위해 동료 사이에 나누어야 할 가치가 아니라,
벗 사이의 친교(親交)를 위해 지녀야 할 신의(信義)로 고정되어 갔다.
실인즉 이러한 뜻의 변개(變改)는 전고(典故)를 떠나,
시대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런 전개라 하겠다.
강제적이고 수직적인 가치에서,
수평적이고 인간애에 기초한 본질적인 가치로 전화되는 것은
인문(人文)의 당연한 역사발전 양태다. 

나는 벗 사이의 신(信)을 생각하면 주저 없이 관포지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잠깐 이들 이야기 한 토막을 잘라 인용해둔다.
(※ 참고 글 : ☞ 2008/02/19 - [소요유/묵은 글] - 히드라(Hydra)는 세상에 왜 존재하지 않는가 ?)

“제나라, 포숙아는 자본을 대고 관중은 경영을 담당하여 동업하였으나,
관중이 이익금을 혼자 독차지하였다.
그런데도, 포숙은 관중의 집안이 가난한 탓이라고 너그럽게 이해하였고,
함께 전쟁에 나아가서는 관중이 3번이나 도망을 하였는데도,
포숙은 그를 비겁자라 생각하지 않고 그에게는 늙으신 어머님이
계시기 때문이라고 그를 변명하였다.
이와 같이 포숙은 관중을 끝까지 믿어 그를 밀어 주었고, 관중도 일찍이 포숙을 가리켜
"나를 낳은 것은 부모이지만 나를 아는 것은 오직 포숙뿐이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
라고 말하였다.”

이들 사이의 우정엔 대가수수관계가 없다.
장래의 기대이익을 바라고 현재를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벗 사이의 관계는 이런 인간 본연의 아름다운 가치의 자연스런 발로가 있을 뿐이다.
이를 신(信)이라 이른다.

맹자가 말한 사단(四端) 역시 인간의 본성에 기초하고 있다.

“어린아이가 막 우물에 빠지려고 할 때, 누구나 두려워 측은한 마음을 일으킨다.
이는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요,
무리 친구들에게 칭찬을 받고자 하는 것도 아니며,
그 어린아이가 지르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도 아니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측은지심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
수오지심이 없다면 인간이 아니다. .....”
(※ 참고 글 : ☞ 2009/09/15 - [소요유] - 무측은지심 비인야(無惻隱之心 非人也))

이들과 마찬가지로,
붕우유신(朋友有信)의 신(信) 역시 그저 단순한 도덕적 가치라든가,
기대효용을 염두에 둔 처세술이 아닌 것이다.
비록 사단에 들지는 않지만,
이들과 동렬에 둔다한들 어찌 지나침이 있으랴.

이게 그리 그른 생각이 아님은,
맹자(孟子)의 다음 인용문으로 확인이 된다.

“不挾長, 不挾貴, 不挾兄弟而友. 友也者, 友其德也, 不可以有挾也.”

“나이가 껴들 것도, 부귀가 껴들 것도, 형제가 껴들 것도 없이 벗 그만으로 사귀어야 한다.
벗이란 그의 덕(德)을 사귐이니 그 사이에 어떠한 (전제조건) 것도 껴들 바 없다.”

벗을 사귐에 있어서,
나이, 부귀, 집안 따위의 권세가 개재될 것이 없이,
벗 그 당자 사이에 덕(德)으로써 사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내가 앞에서 적은 글도 이제 다시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 참고 글 : ☞ 2009/10/16 - [소요유] - 벼슬, 나이, 덕)

“爵一,齒一,德一。朝廷莫如爵,鄉黨莫如齒,輔世長民莫如德。”

“벼슬이 하나요, 연치가 하나요, 덕이 하나다.
조정엔 벼슬만한 것이 없고,
향당엔 연치(年齒)만한 것이 없고,
세상을 돕고 백성을 기르는 데는 덕만 같은 것이 없느니.”

이 말 앞에서,
그저 단순하게 벼슬, 나이로 사람을 분별하여 대하라는 말에 머물러서는 아니 된다.

맹자가 “德一”을 맨 마지막에 둔 까닭을 헤아려야 한다.
덕이 없으면 까짓 벼슬, 나이가 다 무용(無用)이란 말이며,
벗이어든, 사제지간이어든 덕으로써 사귐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
이 말씀의 핵심인 것이다.

내가 밭에 나다니면 시골 사람들을 접하다 보니,
이 말이 적실하니 마음에 와 닿는 바가 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도 너나들이로 넘나들기가 예사이라,
처음엔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였는데,
“輔世長民莫如德”이라,
덕으로써 외적조건인 벼슬, 나이를 지킬 수 없다면,
그것이 혹간 벼슬이 높다든가, 나이가 많은 것이 무슨 자랑꺼리가 될 것이며,
제 위신을 세우는데 무슨 소용이 닿으랴.
한낱 지푸라기 같은 것임이라.

이제 나아가 생각을 더 채워 보거니와,
신(信)과 신용(信用)은 외양 엇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말이다.

“장사꾼은 모름지기 신용(信用)이 좋아야 한다.”
우리는 곧잘 이런 말을 한다.
그런데 ‘신용’ 이게 ‘붕우유신’의 신(信)과 과연 궤(軌)를 같이 하는가?

실(實)과 실용(實用) 또는
신(信)과 신용(信用) 따위는 전혀 다른 말이다.

용(用)이란 요즘 말로 하면 공능(功能), 효과(效果)를 뜻한다.
즉 실용(實用)이란 실(實)이란 이름을 빌어 현실에서 효과를 내겠단 말이다.
실(實) 자체에 기우리는 관심은 외려 부차적이다.
실(實)이 효과를 내야 의미가 있지 그렇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는 태도다.
신(信)과 신용(信用)도 마찬가지다.
흔히 말하는 “장사꾼에게 신용이 중요하다.”
이 때 장사꾼의 신용이란 신(信)이란 외양을 상대에게 보여,
자신에게 구체적인 현실적 이익이 돌아올 것을 기대하기에,
즉 수단으로서 신용이 가치가 있다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붕우유신(朋友有信), 즉 벗 사이에는 신(信)이 있다 할 때,
여기서의 신(信)은 효능을 기대하기 때문에 신(信)이 있는 것이 아니다.
벗 사이엔 신(信)이 당위(當爲)로서 있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벗 사이에 신(信)이 없다면 벗 관계가 애저녁에 성립되지 않는다.
한 마디로 벗 사이엔 대가 없는 신(信)이 펼쳐진다.
현대 경제학 용어를 빌리자면 리스크를 질지언정 기대수익을 바라지 않는다는 말이다.

저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관계처럼 말이다.
관중이 그리 신세를 졌고,
이제 왕자 규(糾)가 소백(小白)에게 패함에 따라,
규 소속인 관중이 소백에게 포로로 끌려온 처지에 이르렀건만,
포숙은 자신에게 돌아온 재상 자리를 양보하고 외려 관중을 제환공(小白)에게 천거한다.
(※ 규(糾), 소백(小白)은 두 왕자로 각기 대권을 다투는 상황하에서,
     관중과 포숙아는 나중에 패가 갈려 이 왕자들을 따로 섬기는 처지였음.)
이들 관계에 어찌 신용(信用), 즉 ‘신(信)을 빌어 쓰임’을 기대하는 바 있음인가?
그리하기에 그저 담백하니 신(信)으로 부를 수 있음이다.

아, 신(信)이란 정녕 아름답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하기에 한편으로는 그 지킴(守節)에 두렵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상인에겐 신(信)은 물론이거니와,
신용(信用)이 없어도 장사꾼으로 남아 있는데 아무런 하자가, 어려움이 없다.
장사꾼은 기실 신(信), 신용(信用)이 아니라 이(利)에 구속된 존재가 아닌가 말이다.

자, 이 말은 어떠한가?
이용(利用)
이 말은 ‘이롭게 쓴다’는 말도 되지만,
남을 내 편리와 이익을 꾀하여 적당히 조정하고 다루어 갖고 논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방편으로 속여 남을 견인하여 내 이해에 복속시킨다.
장사꾼 중에는 이런 짓을 일삼는 이가 적지 않다.
거죽으로는 신용을 보이는 양 싶지만,
나중에 알고 보면 그게 남을 이용하기 위한 술수였음을 알게 되곤 한다.

요즘 현대사회에서는 편리한 게,
아니 영악스럽게도,
장사꾼 간에 신용을 팔고 사기도 한다.
가령 이름을 빌려 주는 것인데,
이를 매명(賣名)이라고 한다.
신(信)이라면 도대체가 거래의 객체가 될 수 있겠는가?
신용(信用)이란 것도 조금이라도 염치가 있다면,
어찌 부끄러움도 없이 사고팔 수 있으랴?

하지만, 실제 오늘날 유명 언론사, 협회들도 이 짓거리를 자행하고 있다.

“oo브랜드대상”, “협회우수회원”, “모범농가” “ooTV방송 출연”

이 따위로 껍데기를 붙여 주는데,
이는 모두 다 돈만 내면 어렵지 않게 바로 살 수 있다.

진보의 가치를 내세우며 그럴듯이 나대는 某신문사도,
저 짓거리를 태연히 하며 돈을 벌어대고 있다.
모두 가짜들이 판을 치고 있음이다.
그러지 않아도 조금씩 하수상한 짓을 해대어 의심이 부쩍드는 가운데,
제 이름을 팔아 삿됨을 조장하는 저 신문사를 목격하고 나니 과연 그러하구나 싶다.
나는 저 사아비 언론사를 브라우저의 즐겨찾기에서 저 밑으로 내려두고 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이 뿐이다.
참으로 괴이쩍은 세상이다.

오죽 하면,

“TV에 절대 방송되지 않은 음식점 oo”

이런 표찰을 자랑스러이 달아놓은 곳도 생길까나!

이런 것을 현대사회에서는 ‘브랜드 가치’니 ‘상표 프리미엄’ 따위로 부른다.
물론 그 이름에 값하는 실력, 내용을 갖춘 충실성이 담보되는 경우도 있지만,
전혀 관계없는 엉뚱한 무뢰배(無賴輩)가 곁다리로 끼어들어,
돈으로 이름을 탐하여 구매하고,
거짓 탈을 쓰고는 종국엔 소비자를 속이는 장사꾼도 적지 않다.

이들은 이를 신용(信用)이라고 부르짖으며 오늘도 손님을 꾄다.
내가 보기에는 신(信)은 물론이거니와,
신용(信用)은커녕,
이용(利用), 꾐에 불과한데 말이다.

이를 우리는 예부터 모리(牟利)라고 불러왔다.
도덕과 의리는 생각하지 않고 오직 부정한 이익만을 꾀한다는 뜻이다.
이런 자들을 모리배(謀利輩)라고 하는데,
우리는 예로부터 배(輩)는 나쁜 뜻으로 많이 써왔다.
잡배(雜輩), 치기배, 간신배, 폭력배, 불량배, 소인배 ...

배(輩), 이게 ‘무리 배’로 훈독 되지만,
따위(流), 등(等)을 의미하기도 한다.
바른 개별 인식 주체가 아니라,
사익을 위해 세상에 휩쓸려 떠도는 등속(等屬)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잔뜩 경멸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
저들을 자존(自尊)이 없는 떼거리, 무리쯤으로 치부하겠다는 의미다.

나는 과연 모리배인가?
유신(有信)의 존재인가?
오늘 이 물음 앞에 서보자.

차가운 날씨,
이런 물음이 목덜미 뒤를 싸하니 지날 제,
부끄러움이 넘쳐 흘러,
목 따인 해당화처럼 발치를 벌겋게 물들이는가?

오늘은,
이런 물음을 던지기에
맞춤으로 적당히 찬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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