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개똥 ⅰ

소요유 : 2021. 4. 13. 18:11


농장 입구에 늘상 개똥이 목격된다.
내가 이를 보는 족족 치워내는데,
한 철, 두 철 지속되다 보니,
참아내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늘 개를 끌고 농장 앞으로 지나는 이들은 두엇 된다.
현장을 잡아야, 제대로 타이를 수 있다.
마침, 개 두 마리를 끌고 내 앞을 지나는 이를 만났다.
그가 먼저 앞서 인사를 건넨다.
내가 사정을 말하며,
혹여라도 똥을 싸게 되면 제대로 처리를 하라 주의를 주었다.
네네, 하며 건성으로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지난다.

내가 강아지를 좋아하고 있음이라,
저들을 뒤없이 마구 다루면,
혹여라도 집에 돌아가 강아지에게 화 풀이라도 할까봐,
나로선 잔뜩 예를 차려 응대를 하였음이다.

들고양이도 한 때 서른 댓 마리까지 건사를 하였고,
지금도 여전히 남은 저들을 돌보고 있다.
그러함이니, 강아지 산책 시키는 것을 두고 흐뭇하게 지켜보지,
이를 방해할 위인이 아니란 말이다.

순간 저 남자의 얼굴 상을 보게 되었다.
하관이 빠르고, 검고, 강퍅하게 생긴 게,
맑은 기운이라곤 한 점도 찾아볼 수 없다.

先察形神,後察色이라고,
사람은 굳이 보려고 애를 쓰지 않아도,
形과 神이 살펴지고, 자연 色이 눈에 띄는 법.
(여기 形은 골격, 神은 안광 정도로 이해를 하면 좋으리라.)
저 자그마한 남자.
골격은 울퉁불퉁, 안광이 불순하고, 피부색이 검고 거칠다.

 
天庭色滯,必遭大難。邊地色暗,必遭大難。

특히 천정(天庭), 변지(邊地) 부근이 응체(凝滯)되어,
색에 윤기가 없고 어둡고뇨.
내, 저자의 내력을 얼추 짐작할 수 있겠다 싶다.

凡氣發於皮內,一百曰後發出爲色,方應吉凶。

氣라는 것은 피부 안쪽에서 펴져,
백일이 지나면 색으로 드러난다.
그런즉 길흉에 응한다 하였음이다.

대저, 사람의 피부색이란,
기질의 외표라,
평생 천하고, 박하게 살았으면,
응당 그리 그렇게 밖으로 드러나게 되는 법이다. 
감추려 하여야 감출 수 없는 법이다.

개똥을 싸게 한들,
남의 농장 출입구에 감히 그리 할 수 있음인가?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오늘의 사람으로서,
이 짓을 할 정도로 염량(炎涼)을 갖추지 못할 수 있으랴?
게다가 매일 그 짓을 하고서야,
어찌 다음에 또 그곳을 편히 지날 수 있으리오?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서라도,
이 짓을 삼가야 한다는 제 계산이 서지 않겠음인가?
이 정도도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면,
이게 사람이냐?
그러함이니, 내가 아낌없이, 사양하지 않고,
저들을 천불한당(賤不漢黨)이라 이르는 것이다.

지금은 죽은 우리 강아지 ‘풀방구리’ 산책을 시킬 때,
사람도 지나지 않는 허허벌판 논두렁일지라도,
나는 사람 눈에 띄지 않도록 수습을 철저히 하였었다.
(※ 참고 글 : ☞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남자에게 주의를 주었고, 그날 헤어졌다.
그런데, 그저께 여자가 같은 개 두 마리를 끌고 나타났다. 
농장 둘레길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나. 
60여 미터 떨어진 멀리서 보니, 
농장 입구에 그 여자가 지나면서, 한참을 서 있다.
내가 멀리서 손을 저으며 머물지 말고 지나라는 신호를 보였다.
하지만, 마이동풍 여전히 볼일을 보고 있다.

내가 거기서 똥을 싸지 말라 소리를 쳤다.
그런데, 여자가 이리 말한다.

‘똥을 싸지 않고 오줌을 누이는 중이다.’

남의 농장 입구에 오줌을 누이는 것은 괜찮은 일인가?
하여 내가 오줌도 누이지 말라 일렀다.
헌데, 여자가 이번엔 말을 바꾸며 이리 말한다.

‘오줌을 누이는 것이 아니라, 잠시 쉬었다 간다.’

그러면서 투덜대면서 사라진다.

내가 농장 입구로 가보니,
개똥이 모락모락 김을 내뿜으며 빛나고 있다.

내가 처에게 말하길,
앞서 남자에게 말하였은즉,
집에서 저녁 먹으면서 여자에게 말하지 않았겠는가?
처가 말한다.

‘행여나 그러려고.’

이곳 시골 동네 인물 됨됨이가 험하고, 궂으며,
사리가 반듯한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음이니,
기대를 하는 것이 무망한 노릇이다.

내가 농장에서 시멘트 단 한 방울도 들이지 않고,
혹간 눈에 띄는 비닐 조각인들 10여 년 동안 연신 줍고 있다.
도대체, 농작물이 자라는 땅이 더럽혀지고서야,
바른 소출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함인데, 남의 집 개똥을 어찌 달가워하리.
그것도 농장 출입구 앞이니.

그런데, 오늘, 예의 그 남자가 개를 끌고는 씩씩거리며 지나고 있다.
그가 연신 터진 입이라고, 
졸가리도 없이, 되지도 않는 말 부스러기를,
물 묻은 개털 털 듯,
부려내고 있다.
내겐 하나도 귀하지 않은 일로 저들에게 또 붙잡혀 시간을 버리고 있다.

그저, 
죄송하다, 앞으로 주의하겠다 하며, 지날 일이 아닌가?
이 정도는 반쪽만 사람 모용(貌容)을 하고 있어도,
자동으로 나올 태도 아닌가?
똥 싼 놈이 화낸다고,
왜 저들은 저리도 당당한가?

내가 그에게 타이른다.
당신이 지나온 그 도로가 본디 우리 소유의 것이다.
그랬더니 그가 말한다.

‘그렇다면 울타리를 쳐서 막아라.
울타리가 없는 한, 나는 상관없이 계속 다닐 것이다.’

내가 그저께 여자에게 개똥을 싸게 하지 말라고 일렀는데,
쉬었다 가는 것이라 하였으나,
실제 똥을 누이고 사라졌다고 이르니,
그 남자가 이리 말한다.

‘그것은 내가 보지 않았으니,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이런 작자와 더는 말을 나눌 기분이 나지 않는다.
대개 이런 자와 말 거래를 더 한들,
아무런 소득이 없다.

천불한당은,
어디 운 좋게 벼락을 맞아,
정신이 확 뒤집히기 전에는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는 씩씩거리며 기세 좋게 그가 가버린다.
아무리 그러한들,
대세(對世) 절대권의 하나인 소유권을 당할 수 있으랴?
게다가 개똥을 남의 집 입구에 싸놓고서야 어찌 제 면목을 세울 수 있으랴?
내가 이기는 패를 지니고 있음인데,
그리 심술을 피운들, 어찌 장래를 장담할 수 있으랴?

내가 아무려면, 저런 검불 하나 다루지 못할 터인가?
차후 다시 그릇된 짓을 목격하게 되면,
가을철 멍석 위에 눞힌 깨 털듯 도리깨로 사정 두지 않고 다루리라.

몇 분 후 그가 다시 나타났다.
농장 안으로 기어들어 오며 말을 나누자고 한다.
더는 그를 상대할 기분이 아니다.
내가 나서며, 그를 농장 밖으로 이끈다.
무슨 말인가?

그가 주워섬긴다.
자기는 경찰청 출입 기자 출신이었다 한다.
어쩐 일인지, 이 촌동네엔 기자 출신이 삼태기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여기가 언론인 배출의 길지일런가?
그러면서 군수며, 그의 동생 등등을 다 알고 있다 하며,
코흘리개 헌 딱지 세듯 생색을 내며 잔뜩 벌여놓는다.
문가가 아닌 게 다행이리라,
대통령 빼고는 이 자의 입을 통해,
갖은 위인, 정절부인이 서로 뒤질세라 앞다투며 등장하고 있음이다.
족벌, 문벌의 화려함이란, 영국 황실이 다 부러워할 지경일세라.

이 레파토리, 나는 이 남자뿐이 아니고,
여기서 만난 다른 노가다 인부들에게서도 곧잘 접했다.
자주 겪는 저들의 무대 위 공연 몸가짐이다.
객석에 있는 이들은, 잔뜩 긴장하라는,
저이들 나름의 무대 기교의 하나인 것이다.

그러면서 동네 사람과 나쁘게 지낼 것 없다고 한다.
나는 단호히 말해주었다.

‘나는 주민과 잘 지낼 의사 없다.
다만, 공연히 가만히 있는 사람, 건들지 말고,
아무 일 일으키지 말고, 그냥 지나치기만 하여도 다행으로 여길 뿐이다.
사람이 도리 지키고, 경우껏 살기만 하면 족할 뿐,
이것 외, 다시 또 주민과 잘 지내려 애를 쓸 필요가 있으랴?’

나는 주민과 잘 지내길 의욕하지 않고,
다만, 사람 도리 제대로 아는 인간을 만나고 싶다.
아니 그조차 굳이 기대하지도 않는다,
다만, 일없이 간섭받지 않고, 홀로 편안히 지내길 원할 뿐이다.

본말전도(本末顚倒)
사람이 발르면, 자연 이웃과 잘 지내게 된다.
이웃과 잘 지내길 의욕하지 말 일이다.
그리 되면, 굽은 것도 펴지 않고 견디어 내게 되고,
이강능약(以强凌弱)이라, 강한 놈이 약한 이를 능멸하게 된다.
이웃과 잘 지내는 것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하얀 웃음 지으며, 저 곡마단에서 빌려온 꼬깔모자를 쓰고 나타나는 물건을 조심할 일이다.
언제고, 수 틀리면, 그대를 밀치고, 제 욕심을 채울 것이다.
그러한즉, 이웃과 잘 지내길 꾀하지 말고,
다만 正語, 正業을 지을 일이다.
공연히 어울리지 않게, 비파(琵琶) 튕기며 고상한 척, 깝치지 말고,
네 자리에서 네가 할 일이나 바로 펼 일이다.

아까 말하지 않았던가?
사유지일지라도, 무시하고 다닐 것이라든지,
여자가 개똥 누이고 간 것, 
자신이 본 일이 아니니, 상관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러고서야, 주민 사이가 좋아질 것을 기대할 수 있는가?
이는 곧,
욕심은 있는 대로 부리고,
주민으로부터는 간섭을 받지 않고자 하는 의도 외에,
도대체 주민과 잘 지내고자 하는 까닭을 찾기 어렵지 않은가 말이다.

기실 나는 주민과 잘 지내고 싶은 생각 없다.
여기 농장은 가근방에서 제일 높은 구릉을 이루고 있다.
게다가 터도 제일 넓다.
내가 여기 농장 위에 서면,
저들에게 무엇 하나인들 아쉬울 것이 한 톨인들 남아 있지 않다.

외려 저들이 내게 다가오길 원치 않고 있다.
대화가 되나, 경우가 통하나,
언제나 하나라도 더 빼앗을 궁리나 트고,
억지 부리며 욕심 채우기에 바쁜 위인들.

내가 저들 천불한당들에 진저리가 나서,
오죽하였으면, 농장 입구를 쇠줄로 둘러 쳐버렸을까나?

나는 저들이 다가오는 것이 편치 않다.
함인데, 부단히 내게 다가와,
경우에 없는 짓을 저지르고는,
외려 땡깡을 피운다.

저 천불한당들.
쇠줄 두 겹, 석 줄로 쳐서,
저들과 만나지 않게 된다면,
그리하고 싶을 뿐인저.

제발 나를 그냥 내버려두길 바란다.

'소요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똥 ⅱ  (0) 2021.04.18
독사구중(毒蛇口中)  (0) 2021.04.16
백신과 의천도룡기  (0) 2021.04.16
뽕과 봄풀  (0) 2021.04.11
아, 아스트라제네카 ⅱ  (0) 2021.04.07
뚜벅뚜벅  (0) 2021.04.07
Bongta LicenseBongta Stock License bottomtop
이 저작물은 봉타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3.0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행위에 제한을 받습니다.
소요유 : 2021. 4. 13. 1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