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이 시대의 주초위왕

소요유 : 2021. 10. 2. 23:23


기묘사화를 극적으로 그린 묘사 장치 하나로써,
주초위왕(走肖爲王)이란 게 있다.

주초는 趙를 파자(破字)한 것이다.
그러니 주초위왕이란 곧 조씨가 왕이 된다는 말이다.
이 글자를 나뭇잎에 써놓고는, 
벌레가 갉아 먹게 하였다.
이를 왕에게 보였으니,
지 아무리 현명한 자라도 마음이 크게 흔들릴 수밖에.

그런데, 꿀을 아무리 발랐다 한들,
벌레가 저리 복잡한 글씨를 따라가며,
갉는다는 것은 쉬이 생각하기 어렵다.

꿀을 가지고 상대를 농락하는 예로써는,
차라리 다음이 더 그럴싸하다.
말이 나온 김이니 잠깐 더듬어 짚고 넘어간다. 

驪姬召申生同遊於囿。驪姬預以蜜塗其發,蜂蝶紛紛,皆集其。姬曰:「太子盍為我驅蜂蝶乎?」申生從後以袖麾之。獻公望見,以為真有調戲之事矣。心中大怒,即欲執申生行誅。

본디 여희(驪姬)는 여융(驪戎) 출신이되,
그 나라가 진秦에게 져서, 공물로 바쳐졌다.
태자인 신생(申生)을 시기하여,
일을 꾸미는데, 그 장면이 바로 이 부분이다.

부왕 진헌공이 멀리서 지켜보는 가운데,
여희는 먼저 머리에 꿀을 바르고는,
신생을 불러 함께 정원에서 놀았다.
꿀을 찾아 벌이 분분히 날아드니,
여희는 신생에게 이를 쫓아 달라 청하였다.
뭣도 모르는 신생이 소맷자락을 휘둘러 벌을 쫓았다.
하지만, 멀리서 지켜보던 부왕은,
이를 오해하여, 신생이 자기의 첩인 여희를 희롱하였다 여긴다.
후에 신생은 여희의 집요한 모함으로,
곡옥으로 달아나고, 마침내 자결하고 만다.

아아, 달콤한 꿀이란,
때론 이렇게도 사람에게 해가 되기도 한다.

내가 이러저런 상념에 빠져든 까닭은,
실인즉 이런 기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손바닥에 왕(王)...與 "최순실 시대?" 맹비난
대선 정국이 한창인 가운데 국민의힘 유력 대권 주자인 윤석열 전 총장의 손바닥에 한자로 새겨진 왕(王)자가 종일 화제였습니다.
~
지난 토론회도 화면도 찾아봤습니다.
2차에서는 보이지 않던 글씨가, 3차와 4차 토론회에서는 확연히 확인됩니다.
그러니까 세 차례 잇따라 손바닥 한가운데 왕자를 적고 나온 겁니다.
논란이 일자 윤석열 캠프는 토론회마다 지지자들이 응원 삼아 적어준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출처 : ytn)


자기 손바닥에 왕王자를 새겨 넣고,
이를 슬쩍 보이게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의도적고의意圖的故意로 여겨진다.

윤석열 부인 김건희의 국민대 박사학위 논문에 나오는,
‘member Yuji’(회원유지)란 너무도 유치하여,
내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헌데, 이제 생각하니,
당시의 논문 제목이,
‘온라인 운세 콘텐츠의 이용자들의 이용 만족과 불만족에 따른 회원 유지와 탈퇴에 대한 연구’
아니었던가?

이들은 운세나 사주팔자 등에 상당히 관심이 많은 양 싶다.
그것이야 각자 믿는 바대로 따를 일이니,
국외자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대선 토론장에 나와,
부러(나는 그리 생각한다) 손바닥에 쓰인 왕이란 글자를 보인다는 것.
이것 참으로 야릇한 일이라 하겠다.
아마도 그리 하여야,
효험이 있다고 믿었기에,
의도적으로 보인 것이 아니랴?

대선 출마한 이의 행동으로서는 너무 진중치 못하다 생각된다.
하지만, 우중에겐 또한 이게 적지 아니 먹힐 것이다.
주초위왕이 실제이건 아니건,
이런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왕’의 적(的)이 누구라고,
겨냥된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저들은 여길 것이다.
위약효과(僞藥效果, placebo effect)처럼,
거짓 약일지라도,
믿음을 가지게 되면,
곧잘 효과가 나지 않던가?

그러니,
진위 불문,
깃발을 높이 들고 흔들거나,
슬쩍 지나는 길에 손수건을 떨어뜨리며,
주위를 환기하는 술수.
그 무엇이 되었든,
상대에게 자극을 가하게 되면,
어쨌건 버려지거나, 잊혀지는 것보다는 사뭇 낫다.

게다가, 냉철한 지성으로 사물을 판단하지 못하고,
이런 따위의 헛된 짓거리에 마음을 주고 마는,
우중(愚衆)들은 여전히 주위에 많이 흩어져 있다.

돌이켜 훑어보면,
권력을 쥐려 하는 자들은 곧잘 미신, 참언 따위에,
기대어 중인들을 희롱하였다.
(※ 참고 글 : ☞ 요언(謠言))

진나라 말기의 진승(陳勝), 오광(吳廣)이라든가,
명말의 이자성(李自成) 참언 역시,
이들이 왕이 된다는 글자로 사람들을 속인다.
이자성의 경우 “十八子,主神器”란 파자를 쓰는데,
여기 十八子는 곧 李,를 파자한 것이다.
主神器이니 이는 곧 이자성이 신기의 주인 즉 왕이 된다는 말이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남아 있었던 것일까?
고인들은 바로 들이 밀지 않고,
저리 파자 등으로 한 자락 깔아 슬쩍 욕심을 가린다.

하지만, 윤석열은 염치고 뭣이고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제 마음보를 드러내고 있다.
저 천박한 욕망이라니, 도대체가.
놀라운 사람이라 하겠다.

그래 사람은 인문학을 배워야 한다.
(※ 참고 글 : ☞ 망치와 도끼)
단순 전문가, 기술자들은 제 일에 숙련된 모습을 보일 수는 있을지언정,
단 한 발자국만 경계를 넘어도,
그저 자축거릴(亍) 뿐, 
옳은 현실 판단, 바른 미래 전망을 해내기 어려운 법이다.

나는 이런 이들의 등장에,
정신이 혼미해지며,
그저 망연히 먼산을 치어다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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