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메시지, 미디어, 메시아

소요유 : 2021. 12. 16. 12:19


메시지, 미디어, 메시아

사람이게든, 사물에게든,
그 life cycle에 대한 수많은 도해가 세상엔 존재한다.
오늘 그 중 하나,
그러나 주목할 만한 Hype Cycle을 만나 한 생각 일으킨다.

맥루한은 1960년 초,
'The medium is the message.'라 말하였다.

대선 후보들을 보라, 
그들은 수없는 메시지를 대중을 향하여 발하고 있다.

이들 떠드는 소리를 가만히 듣다보면,
이게 곧 賣唱行乞이라,
장터에서 장타령 부르며 걸행하는 이와 뭣이 다른가라는 생각이 든다.

메시지 한번 발하며,
하늘 한번 쳐다보며, 대중의 눈치를 살핀다.
어쩌다 지지율이라도 오르면,
계집 감창(甘唱) 소리처럼 자지러지며,
꺼욱꺼욱 눈물 짜며 감격하고 만다.

하지만 내리 박히면,
동지섣달 자리끼 (냉수) 먹고 속 차리기라도 하는 양,
치맛 갈기 말아 쥐고, 속고쟁이 까내리겠다는 듯,
다시 고쳐 미소 지으며 침상으로 오르며 가랑이 벌리고 자빠진다. 

이재명의 기본 소득만 하여도,
메시지가 그 실질 내용이나 지향 철학과 다르게,
발화자의 필요에 따라, 수시로 변개되는가를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기본소득 하나를 마치 화두인 양 부여잡고 후보가 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이를 거둘 수 있다 하였다.
예의 국민 팔아먹으면서,
국민이 원치 않으면 고집하지 않겠다 슬쩍 뭉개고 말았다.

하지만, 그 말 뱉어내며 삼지사방으로 튀긴 침이,
미처 땅에 닫기도 전에 이리 말하고 있다.

"내년 본예산에 넣는 일회적인 것을 포기한 것이지, 
정책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과시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라,
그의 말은 요령부득 기지촌 가시 철망에 걸린,
양갈보 찢어진 팬티처럼 좌우, 동서로 마구 휘날린다.

샛바람, 갈바람, 마파람, 된바람
철 따라 부는 바람이 좀 많은가?
정치인의 입에서 나오는 메시지란,
바람 따라 수시로 달라지니,
갈 볕에 벌어지는 밤송이나,
잔술에 엎어지는 들병이와 뭣이 다르랴?

메시지란 이리도 허망한 것이다.

그런데, 보아라,
다음이나 네이버처럼 미디어를 장악한 이가 메시지를 발하든가?

메시지 크리에이터가,
미디어 플랫폼 네이버 이해진을 어찌 당할 수 있으랴?
그는 메시지를 피가 나도록 목이 터져라 외치지 않는다.
다만 미디어 버스 턱하니 깔고 앉아 있으면,
절로 메시지가 발하여진다.

술청에 앉아 술을 처먹어도,
창문 바깥에 눈이 내리나, 비가 오나,
상관없이 객손들이 다투어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다.
이것 적절히 걸러 늘어놓기만 하여도,
떡이 되고 술이 되어 돌아온다.

메시지는 허랑한 것.
재명이도, 석열이도,
갈걷이 끝난 빈 밭에 우둑하니 서있는 수수깡처럼,
갈바람 맞으면 그저 우우 거릴 뿐인 것을.

메시지가 아니라 미디어가 곧,
밥이자, 술이며, 미녀이며,
곧 하느님이다.
그래 그렇다.
미디어야말로 메시아이며, 하느님이기도 하다.

오늘 이 추접스럽게 돌아가는 현실을 목격하고도,
아직도 육추실에서 노란 조동아리로,
삐약 거리는 병아리처럼,
메시지를 말하고 있음이더냐?
이제, 그대 당신들 머릿속을 리셋하라.

하지만, 미디어도 이젠 진화하고 있다.
암호화폐, 메타버스로, NFT로.
그렇지만 영원히 변치 않을 메시지는,
역시나 농단(壟斷)이다.

내 이제껏 살아오면서 배운 것은,
세상에 메시지도, 미디어도 농단을 이기지는 못하더라.

‘농단이 메시아다.’

(Ⓒ bongta)

그대 당신들이 메시아나 영웅이 아니라면,
메시지가 아니라 미디어에 주목할 일이다.
농단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겠다면.

미디어를 공부하다,
하나의 말씀을 만났다.

(※ 출처 : wikipedia - 技術成熟度曲線(The Hype Cycle))

기술성숙도곡선(技術成熟度曲線, The Hype Cycle)을 보면서,
환멸의 골짜기(泡沫化的底谷期, Trough of Disillusionment)란 표현을 접하자,
저 실감나는 말씀에 놀란다.

科技誕生的促動期  Innovation Trigger
過高期望的峰值    Peak of Inflated Expectations
泡沫化的底谷期    Trough of Disillusionment
穩步爬升的光明期  Slope of Enlightenment
實質生產的高原期  Plateau of Productivity

그래 Hype Cycle를 보면서,
새삼 공부를 다시 하게 된다.

헌데, 저 Hype Cycle은 전 생애 주기를 통해,
단 한 번, 일회적인 게 아니다.

각 사이클 매 단계 마다,
저 5단의 단계가 되풀이 되며 내장되어 있다.

(Ⓒ bongta)

그림을 보면,
dominant wave라 명명한 큰 파동이 흐르고 있다.
그 위에 secondary wave라 명명한 이차파동이
dominant wave 위에 실려 출렁이고 있다.

인생이 파도 위에 실려 가는 나룻배처럼 갖은 곡절이 다 벌어지듯,
사물의 제행(諸行) 역시 바람결에 날리는 낙엽처럼 중중(重重) 흘러가는 법.

그러함이니,
혹 그대 당신이 환멸의 골짜기에 들었다 한들,
실망할 일이 아니며,
Peak of Inflated Expectations에 들어 있다 한들,
마냥 풍선을 높이 띄울 일도 아니다.

***

농단에 대한 보론(補論)

海納百川 有容乃大,壁立千仞 無欲則剛
청말 임칙서林則徐의 글을 이리 옮겨 놓고 떠오른 생각 한 조각을 떨군다.
(그는 광주廣州에 부임하여 영국으로부터 수입된 아편을,
석회를 묻혀 바다에 쏟아 버렸었지.
그와 같은 강직한 관리는 현대에도 쉬이 찾아내기 어렵다.)

‘바다는 수 백 강을 용납하기에 그리 크다.
천길 절벽은 욕심이 없기에 강하다.’

구글이 돈을 버는 것은 그저 단순히 플랫폼 위치에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가령 유튜브를 두고 말한다면, 거기 드나드는 유튜버를,
일정한 규칙 내에서 아무도 차별하지 않는다.
돈을 벌더라도,
이리 대양처럼, 산처럼 의젓할 일이다.
그저 눈깔이 시뻘게져,
한 때의 기회라며,
돈 훑기 바쁜 인간과 어찌 비교가 가능하겠음인가?

그 뿐인가?

‘play to earn’

구글은 참여자로부터 마냥 삥을 뜯고 빠지지 않는다.
참여자 역시 생태계 기여자인즉슨,
그들이 수익을 낼 수 있게 열려 있다.

하지만, 가령 털중이를 보라.
털중이 공장을 그 누가 있어 플랫폼, 미디어라 이르는가?
그의 편협함을 아는 이라면,
또한 설혹 그러고 싶을지언정,
부끄러움 한 조각이라도 이는 이라면,
그를 감히 플랫폼 반열에 올려 두지 않으리라.
그는 맹자에 나오는 농단(壟斷)의 주인공 천장부(賤丈夫)에 불과할 뿐이다.

(※ 참고 글 : ☞ 농단과 시장)

하지만, 미디어, 메시아도 아니며, 농단도 아니다.
CREATOR가 아니라 ARTIST로 살아갈 일이다.

이에 대하여는 글 차례를 달리 하여 바로 잇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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