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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坎

소요유 : 2021. 12. 17. 21:06


䷜坎

참으로 답답하다.

좌로 가도 물이요, 우로 가도 물을 만날 뿐이다.
왼통 물로 막혀있다.

前後都有危險

전후에 모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도대체 윤가든 이가든 어떤 인간을 택하려 한들,
뒤가 무서워, 선뜻 손이 나가지 않는다.


(출처 : fmkorea)

지금은 시민들에게 물음을 던져놓고,
무작정 답하라 윽박지르고 있다.
때론 물음을 거부하는 것이,
좋은 방책이 될 수도 있다.
(※ 참고 글 : ☞ 물음을 물을 수 없는 물음)

역경(易經)엔 소위 4대 난괘(難卦)라 불리는 것이 있다.
水雷屯, 澤水困, 坎為水, 水山蹇
이 넷이 그것이다.

나는 평소 점을 치지 않았지만,
언젠가 하도 막막하여 점을 친 적이 있다.
헌데, 묻는 점마다 이 4가지 괘를 연이어 얻은 적이 있다.

과시 신통(神通)한 노릇이라 하겠다.
내가 유리(羑里)에 갇힌 주문왕이 아닌데,
아무리 고경(苦境)에 들었다한들,
어찌 이 넷이 연달아 나타날 수 있는 것인가 말이다.

역점을 칠 것이 아니라,
차라리 로또를 샀으면 바로 팔자를 고쳤을 터이다.

팔만 사천 번을 뽑아야 얻을 수 있는 괘를 거푸 얻었음이니,
까짓 로또를 못 맞추겠음인가 말이다.

헌데, 선택지가 둘 밖에 없다면 어찌 할 터인가?
윤가가 아니면 이가에게 돌아가고 말 제비뽑기라면,
반 토막 치면, 틀림없이 그 놈 아니면 저 놈에게 돌아가고 말 일인데,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게다가 구정물이나 개숫물이나 더럽기는 마찬가지인데,
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다고,
이 난리굿을 치며 가려야 한단 말인가?

선거 보이콧 운동이라도 벌이고 싶다.
시민들이 모두 일떠 일어나,
내게 자유를 달라 외치면 어떨까 싶다.

所以習坎就是上下內外都是坎

습감이라,
상하내외,
모두 물밖에 보이지 않고 있다.

행로가 뻔히 보이는데,
왜 그 구정물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가?

역경에서 坎(水), 艮(山)은 위험을 상징한다.
물에 갇히고, 산에 막히면,
섣불리 나대지 말고, 가만히 때를 기다릴 일이다.

헌데, 지금의 실질적 양당 체제하에선,
인민들은 고삐에 매인 짐승처럼 도리 없이 험지로 끌려 나가고 있을 뿐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저 녀석들은 이를 알고,
더욱 기고만장하며 별별 짓을 다 저지르고도,
뻔뻔하니 ‘나 예쁘지 않아?’ 이리 설치고 있는 것이다.

내 그러니 권하거니와,
현실적으로 거국적인 선거 보이콧이 여의치 않다면,
차라리 그 날 로또를 사고 볼 일이다.

만약 내 말을 듣고 로또를 사서 횡재를 하면,
나와 반 띵할 일이라 새삼 가르치지는 않겠다.

다만, 맹자는 염치를 모르면 사람이 아니라 하였다.
그 때에 이르러 그대가 사람이고 싶다면,
이 글을 다시 읽을 일이다.
아무렴.

***

여담(餘談)

성북동 근처 구멍가게에 로또를 파는 곳이 있었다.
사람들이 어찌나 꾀는지, 주인은 로또 파는데만 전심전력하였다.
그 밖의 다른 물건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손님들이 알아서 봉투에 담고, 돈을 치르면,
그냥 믿고 셈만 하였다.

그런데, 그가 세들어 살던 곳이 헐리고 새 건물이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대로로 나가 여든여덟칸 짜리 휘황찬란한 점포를 새로 내었다.

아불싸.
그가 내게 물었다면,
그 짓을 하지 못하게 하였을 터다.

홀을 24시간 불을 밝혀, 근처 이웃까지 훤히 밝히었는데,
이것이 손님을 꾀는 장치라 여겼을 터이지만,
실인즉 이는 자신을 속인 것이다.

저 밝은 불은 주인 자신의 자심감이나 기대 지시 상징일 뿐이지,
정작 손님은 저런 곳에선 운빨이 피지 못하는 법이다.

대저 운이란 막힌 곳으로부터 움이 터 자라는 법.
먼저처럼 옹색하고 조금은 어둔 곳에서,
발운(發運)의 기회가 많고, 기운도 더 센 법이다.

게다가 복권을 사는 이들이란,
대개 복이 박하고, 삶에 찌들어 있은즉,
휘황찬란한 조명, 그 태양(太陽) 기운을 급자기 만나면,
외려 자라던 복까지 까슬려 타버리게 된다.

大運推移

대운은 수레바퀴처럼 구르는 법.

天下之福德始玄同矣

대저 복이란 현빈(玄牝)에 감추어져 있다 자라는 법.
요즘 계집사람처럼 숨긴 것 없이, 다 벗어재낀 시뻘건 자리에서,
어찌 터럭 한 올인들 발양(發陽)할 수 있으랴?

그러함이니,
혹 선거 날에 로또를 살 작정이 선 이는,
여곡(女谷)처럼 깊숙이 들어간 곳에 자리 잡은 복집을 찾을 일이다.
그렇다하여 궁색한 곳을 찾으란 말이 아니다.
도덕경에 이르지 않던가?

谷神不死,是謂玄牝。玄牝之門,是謂天地根。綿綿若存,用之不勤。

‘곡신은 죽지 않는다.
이것을 일러 현빈이라 한다.
현빈의 문은 천지의 뿌리다.
면면히 이어지나, 쓰임에 (애써 발악하듯) 힘쓰지 않는다.’

니.미.럴.

이가나 윤가나 그 어떤 작자가 되든,
앞길이 훤히 보이니,
차라리 그날 도톰한 골짜기에 또아리를 튼 인연을 찾아,
네들 운수나 시험해보는 게,
한결 수지맞는 일이 아니랴?

니.미.럴. 
할 일이란 말이다.

국가나, 정권은 유한하나.
그대는 綿綿若存의 당체일 뿐인 것을.

***

로또를 사라 이르니,
내 말을 듣고 나설 위인이 정말 있을까나?

내 노파심에서,
여기 또 다른 이야기 하나를 친절하게 풀어내놓으니,
이를 마저 듣고 길을 나설 일이다.

齊孟嘗君田文以五月五日生,其父田嬰讓其母曰:「何故舉之?」曰:「君所以不舉五月子,何也?」嬰曰:「五月子,長與戶同,殺其父母。」曰:「人命在天乎?在戶乎?如在天,君何憂也?如在戶,則宜高其戶耳,誰而及之者?」後文長與一戶同,而嬰不死。是則五月舉子之忌,無效驗也。夫惡見兩頭虵,猶五月舉子也。五月舉子,其父不死,則知見兩頭虵者,無殃禍也。由此言之,見兩頭虵自不死,非埋之故也。埋一虵,獲二福,如埋十虵,得幾祐乎?
(論衡 福虛)

“맹상군 전문(田文)은 5월 5일에 태어났다.
그 부친 전영이 그 어미에게 말했다.

‘이 아이를 어찌 거둘 수 있으랴?’

그 어미가 말하였다.

‘군께선 오월생 아이를 거두지 않겠다 하시니 어인 까닭이오니까?’

전영이 말하였다.

‘오월생 아이는 커서 키가 문 높이까지 자라면, 그 부모를 죽인다.’

그러자 어미가 말하였다.

‘인명이란 하늘에 달린 것이오니까, 문에 달린 것이오니까?
하늘에 달린 것이라면 당신은 어찌 걱정하실 것이며,
문에 달린 것이라면 마땅히 그 문 높이를 크게 할 일이니,
누가 그 문 높이에 이르겠습니까?’

후에 맹상군 전문이 커서 키가 문 높이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비인 전영은 죽지 않았다.

이는 오월생 아이를 꺼리는 것이 아무런 근거가 없음이 된다.
무릇 양두사(兩頭虵)가 두려운 것은, 오월생 아이를 꺼리는 것과 같다.

오월생 아이를 거두어도 그 부친이 죽지 않듯이, 
양두사를 보아도 재앙이 닥치지 않는다.

이리 볼 때,
양두사를 보아도 죽지 않은 것은 뱀을 죽여 묻었기 때문이 아니다.
뱀 하나를 묻어 두 가지 복을 얻었다면,
열 마리를 묻으면, 그 복이 얼마나 되겠음인가?”

본디 맹상군의 아비인 전영에겐 자식이 40여인이 있었다 한다.
그리고 맹상군은 천첩(賤妾) 소생이니, 더욱 소홀히 대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맹상군은 소위 전국시대의 4군(君) 중 으뜸으로,
그의 활약상은 실로 그 시대의 압권이었다.
(※ 참고 글 : ☞ 식객 3000과 조루)

여기 양두사에 대하여는,
먼저 나의 지난 글을 읽어 두어야 이해가 쉬울 것이다.
(※ 참고 글 : ☞ 적로와 쌍두사)

뱀을 묻어서 더 이상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한 일은 선한 일이다. 
설마, 그가 지난 일에 악하게 살다가,
이번에 착한 일을 하여 복을 받았을 터인가?
돌은 본래부터 단단하며, 난은 본디 향을 지니고 있다.
손숙오가 뱀을 묻었기에 복을 받았다면,
태어나면서부터 받은 천성은 아니란 말과 같다.

즉 오월생이 꺼리는 상대라든가,
양두사 묻는 일이 복을 얻는 원인 행위가 되었다든가 하는 것은,
다 허랑한 믿음일 뿐이다.

그러함이니,
내가 말한 로또 사는 일, 그리고 복집을 가려 택하는 것,
이 역시 그대 당신의 복과는 관련이 없다는 말이 되겠다.

복을 얻은 일은,
뱀을 묻어준다든가,
또는 로또를 산다든가에 달린 것이 아니다.

항차, 저 불교에서 말하는 팔정도, 육바라밀을 행한다한들,, 
이게 복을 빌기 위해 하는 일인가?

논형을 지은 왕충(王充)은 동한 사람,
지금으로부터 거의 2000년 전 사람이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리 사리가 맑고, 엄정한 이가 살았음이다.

손바닥에 왕짜나 새기고,
거울방을 만들어 들어 앉는다 하여 복이 온다고 믿는 이들이 사는,
지금의 우리네 세상 사람들과는 격이 천양지차로 한참 달랐다.

이가, 윤가.
이 악마구리 같은 인생들.
대통령이 그리 되고 싶다든?

육바라밀 중 하나라도 닦으라지.

***

凡哀泣而不止曰咺,哀而不泣曰唏。

서한 양웅(楊雄)이 지은 방언(方言)에 나오는 말이다.
슬퍼 울되, 그치지 않는 것을 훤(咺)이라 하고,
슬프나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을 희(唏)라 하였다.

이제 이 땅의 시민들은,
더는 촛불을 들 의욕도 기울고, 기력도 쇠하였다.
울다 울다 지쳐 이젠 눈물조차 말라버렸음이다.

凡大人少兒泣而不止謂之唴,哭極音絕亦謂之唴。

아이가 울다 울다 극에 이르면 기진하여 울음 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이를 일러 강(唴)이라 한다.

이젠 이 땅의 시민들은 울다 울다 기진하여,
눈물도 마르고, 우는 소리조차 끊어지고 말았다.

저 썩을 놈의 정치모리배들,
허망한 노릇인 것을 알지만,
그들에게 하늘로부터의 복이 빗겨가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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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 2021. 12. 17. 21:06 :